뇌경색 딸 15년 간호 후 살해한 노모…법원 “간병살인 외면하지 말아야”
민나리 기자
입력 2020 07 10 11:41
수정 2020 07 10 11:41
딸 2004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2012년 고관절 부러져 거동에 어려움
우울증·불면증에도 15년 간호한 노모
“딸 보내고 나도 따라 죽으려 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10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70)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인천 계양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친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범행 후 인근 야산에 올라가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인근 주민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A씨는 2004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2012년 고관절이 부러져 거동이 어려워진 딸을 15년 이상 간병해왔다. 간병으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딸의 오랜 병 간호에 지쳐 힘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면서 “딸을 먼저 보내고 나도 따라 죽으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심에서 A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A씨도 최후진술에서 “모든 범행을 인정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가 15년 동안 거동이 어려운 피해자를 간병하면서 상당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면서 “심신이 쇠약해져 피해자를 돌보는 것이 한계상황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할 시설이나 제도적 뒷받침이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면 이러한 비극적인 결과를 오롯이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며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장기간 간병하는 모든 사람이 A씨와 같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으면서 15년간 피해자를 간병하는 것 외에는 A씨에게 선택 가능한 대안이 제시된 적이 없어 우리 재판부가 결론을 내기 매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심 형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트윅, 무단 전채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