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사회불만 ‘시한폭탄’… 묻지마 범죄자 대부분 취약계층
한상봉 기자
입력 2019 04 17 22:52
수정 2019 04 18 07:42
형사정책硏이 분석한 ‘묻지마 범죄’
2008년 10월 정상진(당시 30세)에 의해 발생한 ‘서울 논현동 고시원 사건’의 복사판이다. 논현동 사건 역시 방에 불을 붙인 뒤 불을 피해 복도로 뛰쳐 나온 사람들을 흉기로 마구 찔러 6명을 숨지게 한 참사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형태 범죄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이날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살해 사건 용의자 안모(42)씨는 경찰에 여러 가지 얘기를 늘어놨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아울러 범행 동기는 복합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뿌리를 보면 사회·정치적 불만, 상대적 박탈감, 개인관계 등 매우 복잡하다”며 “이 때문에 단기적 처방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다보니 사건이 계속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무동기 범죄 패턴을 보면 가장 많은 게 정신질환이고, 두 번째가 사회불만형”이라면서 “안씨의 경우 임금체불 때문에 아무 관련도 없는 이웃을 희생시켰다는 게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내놓은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회에서의 낙오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불만과 좌절감을 키우게 되고, 사소한 계기에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자 생활 수준에서 드러난다. 보고서를 보면 묻지마 범죄자 5명 중 1명은 고정된 주거가 없었다. 또 가해자 절반은 혼자 거주하고 있었고 범행 당시 직업이 없던 사람들이 전체의 75%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직업이 있어도 대부분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 종사자들로 경제 취약 계층이었다. 실제 2008년 벌어진 강남 고시원 무차별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당시 실직 상태에다 빚을 지는 등 금전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최근 수년간 생활보조금으로 근근이 지냈다.
안씨의 조현병 경력이 제기되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안씨의 병력과 관련해 “아파서 병원 다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며 “범죄예방을 못한 국가기관과 경찰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에 퇴원한 환자에 대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범죄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절차 등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거나 자기통제력이 약한 사람들이 많은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제 정부가 묻지마 범죄 대책을 장기적 중요 과제로 삼아야 한다. 1차연도 전수조사를 시작으로 관련기관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순천향대 오 교수는 “범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식별할 수 없고, 식별한다 해도 사전에 조치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사회통합과 소외계층 배려에 힘을 쏟는 방법뿐”이라고 조언했다.
이수정 교수는 “이 사건의 핵심은 불을 지른 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라면서 “단순히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처벌을 감경해서는 안 되고, 정신병 증상이 있는 사람을 혼자 살도록 내버려 둬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국민들을 공포 속에 몰아 넣은 묻지마 범죄가 얼마나 많았느냐”면서 “예측할 수 있는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지방정부·병원·경찰이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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