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블랙리스트 시발점” KBS 프로그램 줄 하차
김채현 기자
입력 2019 04 17 15:28
수정 2019 04 17 15:30
KBS진실과미래위원회는 지난 4월 2일 제 11차 정기위원회를 열고 ‘TV·라디오의 특정 진행자 동시 교체 사건’ 조사보고서를 채택, 의결했다. 2008년 9월 이병순 사장 취임 후 첫 번째 개편에서 가수 윤도현이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MC를 동시 하차했고, 외부 권력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KBS진실과미래위원회는 “이 일은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한 특정인들에 대한 출연 배제,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의 시발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2008년 8월 8일 정연주 사장의 해임이 이사회에서 결정되면서, 8월 25일 이병순 사장이 차기 KBS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병순 사장 취임 후 첫 개편(TV-10.27, 라디오-11.17)에서 다수의 외부 MC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교체돼 논란이 발생했다. 윤도현, 정관용, 박인규, 김구라 등 인물들의 하차를 둘러싼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실제로 2017년 9월 11일 국정원개혁위는 5인 중 윤도현, 김구라가 이명박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82명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가수 윤도현은 2008년 5월 17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에 참석해 정부 비판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후 2008년 10월 초 ‘윤도현의 러브레터’ 제작진에게 ‘러브레터를 그만 하겠다’고 하차 의사를 전달했지만, 당시 예능1팀장은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KBS의 대표 프로그램이고 장수 프로그램이니까 윤도현을 설득해 달라, 사회 참여를 조금 자제시켜 달라”는 이야기를 윤도현 소속사인 다음기획 김영준 대표에게 부탁했다. 당시 팀장을 포함한 모든 제작진들과 제작 간부들은 윤도현이 꼭 필요한 진행자라며 적극적으로 하차를 만류했기 때문에 개편과 관계없이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양측은 합의했다.
하지만 2008년 10월 29일 예능1팀장은 담당 CP와 PD를 불러 윤도현을 하차시키라고 지시했고, 담당 CP는 항의했으나 지속적으로 하차를 지시했다. 당시 예능1팀장은 조사 면담에서 자신이 바꾸라고 지시한 적이 없으며, 하차시키도록 상부에서 지시받은 적도 없다고 했으나 당시 CP와 PD, 그리고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는 모두 ‘팀장이 하차 지시했다’고 공통적으로 진술을 했다. 최종적으로 윤도현에게 하차가 통보됐으며, 이후 ‘러브레터’는 ‘페퍼민트’로 바뀌어 배우 이하나가 후임 진행자가 됐다.
윤도현이 TV에 하차 의사를 밝혔을 시점에 라디오에도 동일하게 의사를 밝혔으나, 라디오 제작진들은 윤도현의 하차를 만류하기 위해 1달간의 DJ휴가를 보내줬고, 휴가기간 중 가수 이승환이 진행하게 됐다.
2008년 10월 말 윤도현의 복귀가 가까워지자 2FM팀장은 담당PD를 통해 윤도현의 복귀 의사를 물었다. 10월동안 2FM에서는 지속적인 개편회의가 진행됐고, 개편회의 중 ‘윤도현의 뮤직쇼’는 개편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진행자 교체도 없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TV에서 윤도현에게 하차를 통보한 날인 10월 29일 2FM팀장은 다음기획의 김영호 이사를 만나 윤도현의 하차를 통보했다. 윤도현 하차 소식이 알려지자 라디오 PD들이 사무실에서 2FM팀장에게 강력히 항의해 언쟁이 오갔고, 이후 라디오위원회(11.14)에서도 문제제기가 됐다. 2FM팀장은 이번 조사에서 당시 라디오 본부장의 지시에 의해 하차를 통보했다고 진술했다.
2008년 11월 가을 개편에는 다수의 출연자들이 하차를 했는데, 그 중 가수 윤도현의 경우 시사평론가 정관용 씨와 함께 TV와 라디오에서 동시 하차를 한 경우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교체로 볼 수 없는 여러가지 정황이 있었다. 당시 라디오본부의 공식적인 해명은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외부 진행자를 교체한다는 것이었다. 상당수는 내부 진행자로 교체됐지만 2FM ‘윤도현의 뮤직쇼’ 후임은 개그맨 서경석으로, 제작비 절감이라는 사유와 맞지 않았다.
또한 TV와 라디오 모두 윤도현을 유임시키기로 한 상황에서, 더군다나 후임 진행자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지명도가 높은 MC를 갑자기 교체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TV와 라디오에서 같은 날(10월 29일) 하차가 통보된 것 역시 석연치 않았다. 통상적으로 출연자를 교체할 때는 제작진의 논의를 거쳐 연출자가 통보하는 것이 관례이나, 이 사건에서 라디오의 경우에는 임원 바로 다음 직위의 팀장(당시는 팀제로, 팀장은 현재의 국장급)이 직접 통보를 했다.
이러한 문건들을 통해 2011년 9월 MBC라디오 ‘2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 하차를 국정원이 적극적으로 수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2008년 KBS의 TV·라디오 프로그램 동시 하차에 대한 국정원 개입의 정황은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런데 지난 2월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제2권 p.108~109에는 윤도현에 대한 국정원 문건의 내용이 나온다.
2010년 11월 1일 국정원의 ‘좌파 연예인 활동실태 및 관리 방안’ 문건에서는 김제동과 윤도현 등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제재’와 그 결과를 언급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이 있었던 2008년 2월부터 해당 문건이 작성된 2010년 11월 사이 윤도현에게 가해진 직접적인 불이익 조치는 2008년 KBS TV·라디오 동시 하차가 유일하다. 따라서 국정원 문건에서 말하고 있는 직접제재는 윤도현 등의 진행자 강제 하차에 외부의 권력이 2008년부터 개입해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KBS진실과미래위원회는 2008년 윤도현의 TV·라디오 동시 하차 사건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이어져 온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들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고,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윤도현의 하차는 국정원이 개입, KBS 상층부의 협조를 통해 급박하고도 비밀스럽게 실행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결론 내렸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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