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들] 송광과 선암 품은 조계산, 불교가 곧 꽃인데 뭘

송광사 어느 수행 도량 뒤편의 꽃대궐. 카메라를 들이대다 허드렛물을 뒷마당에 뿌리는 스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참 송구한 일이었다.
늘 이맘 때 4월 셋째주가 돌아오면, 마음 속에 꽃대궐이 지어진다.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란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소문한 두 사찰 때문이다. 아니 두 절집을 잇는 조계산이란 아름다운 산 때문이다.

지난 19일 서울을 일찍 출발해 일박이일로 돌아봤다. 19일 오전 10시 30분 송광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했다. 선암사로 이르는 길은 송광사를 등졌을 때 크게 셋으로 나뉜다. 왼쪽부터 장군봉과 접치재를 거치는 능선길, 다파리 삼거리에서 능선길을 버리고 계곡으로 보리밥집 거쳐 이르는 계곡길, 가장 오른쪽 천자암으로 빙 둘러 보리밥집 거쳐 선암사에 이르는 방법이다. 송광사는 원점 회귀한 뒤 둘러볼 요량으로 쳐다도 보지 않고 오른쪽 천자암 오르는 길로 내달았다.

순천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90분쯤 걸려 천자암에 이르니 쌍향수가 반긴다. 참향나무(Juniper) 두 그루가 얽혀 있는 모양인데 그 높이와 크기가 실로 장대하다.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 다녀올 때 썼던 향나무 지팡이 둘을 심었는데 실로 연(緣)이 깊었던 모양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예를 다하는 모습이라는데 보고들은 바가 적어서인지 요해가 되지 않았다. 손만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한다는데 아예 ‘올라서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다.
천자암에서 2㎞ 조금 넘게, 널찍한 길을 내달리면 조계산 산행 때 찾게 되는 보리밥집 원조집이 나온다. 지경터라 불린 옛날 숯가마터 근처를 일군 최씨 아저씨네 집이다. 지경터는 승주와 송광의 경계를 이룬 곳이라 이름붙여졌다. 생경하게도 곳곳에 ‘SINCE 1980’이라고 적힌 입간판이 곳곳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군 전역 후 할게 없어서 아버지가 하던 숯가마터 주변을 손수 일궜단다. 굴목재란 이름이 여러 곳인데 나무가 하도 우거져 굴을 이룬다는 뜻이다. 숯가마터가 100곳도 넘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레방아를 돌려 전기를 썼는데 최씨는 이곳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서울 전기도 여기서 만든다고 장난을 쳤더니 순천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던 학생들이 단전이 됐다며 거기 물레방아에 무슨 일 생겼느냐고 묻는 전화를 했던 일도 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도토리묵과 비빔밥 7000원씩에 막거리 두 병은 됨직하게 항아리에 담아 6000원 받았다. 사월 답지 않게 날이 춥다며 화목난로를 때는 김에 알밤을 구워 손님들에게 돌렸다.
보리밥집에서 20분 정도 더 가면 선암사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하는 편백나무 숲이 있다. 흔들 벤치의자가 다섯 군데 있는데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게 설치한 배려가 돋보인다. 두 사람이 껴안고 잠들 수 있는 흰 바위 하나가 떡하니 앉아 있는데 소슬한 바람 맞으며 누워 있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평소 절집에 들면 꽃구경하는 일이 잔망스럽게만 느껴진다.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런데 지난 1일 발간된 선암사신문 8쪽을 보고 무릎을 쳤다. 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의 이름에 꽃이 들어간 이유나 부처가 온갖 꽃들이 만발한 룸비니 동산 무우수 꽃밭에서 태어난 이력, 부처가 법문을 하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 것처럼 ‘꽃이 곧 불교’라고 역설하기 때문이었다. 백매는 다 졌고 원통전과 각황전 주변에 홍매가 그득하다. 전날은 꽃망울이 만개하지 않았는데 이날 터뜨렸다고 했다.
육당 최남선은 선암사 매화의 “자태가 아리도록 곱고, 향은 코가 헤어져 나가는 듯하다”고 했고, 작가 문순태는 ”“꽃이 피고 진 600년의 아득한 시간은 소멸이 아니고 깨달음이었으리라”고 적었다.
무람하게도 기도 도량에 몰래 들어가 뒤뜰의 수곽(水郭)을 카메라에 담았다. 용서하시라. 맨 위가 부처께 바치는 성수, 그 다음이 쌀 씻는 물, 차례로 허드렛물 쓰는 곳이라 했다.
선암사 뒤켠의 대각암 오르는 길에 마애여래입상이 서 있다. 사진으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7m 바위에 입상 높이만 4.6m에 이른다.
선암사 자랑거리 중 하나인 승선교를 감히 아래쪽 다리 아래로 넣어 촬영했다. 원래 계획은 선암사를 오후 4시까지 돌아보고 송광사로 돌아가 마저 구경하려 했는데 꽃구경에 취해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기자는 충분히 가능한 시간과 거리였지만 길동무가 지친 기색이어서 그랬다. 선암사 입구에서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 버스를 타고 승주읍 나와 111번 버스 타고 송광사 입구로 돌아와 잘나가는 순천식당에서 비빔밥 정식에 소주 한 병 홀짝이고 송광장 여관에 4만원 주고 묵었다. 그 옛날 수학여행 때의 여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나름 좋았다. 미드 ‘왕좌의 게임’ 시즌 8 1편을 볼 수 있게 (어느 지방에 가면 나오지 않는) 스크린 채널을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20일 아침 6시 조금 전, 송광사를 찾았는데 매표소에 어르신이 떡하니 앉아 계셔 놀라웠다. 공짜 관람은 틀렸지만 2000원 내고 즐겁게 구경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껏 가보지 않았던 선암사 가는, 가운뎃길 계곡길을 30분쯤 오르다 돌아 내려왔다. 나중에 탁족하기 좋은 곳들을(스님들 들으시면 “요놈 봐라” 하실 일이지만) 찾아냈다.
이 사진은 송광사 찾는 이들이 많이 찍고 심지어 관람권에도 등장하는 풍경이다. 20여년 전 어느날 이 쪽을 거닐다 스님 게송 소리를 듣고 감명받았던 기억이 새로웠다. 사위가 고적하니 아침 일찍 일어난 보람을 찾았다.
암자란 무릇 이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 같은 불일암. 법정 스님이 2010년 3월 10일 열반에 들었던 곳이다. 무소유의 길을 숨차도록 오르면 나온다. 대나무 숲으로 앞쪽을 가려 풍광이란 것은 주어지지 않지만 마음 속의 길이 열리는 것 같다. 스님이 생전에 쓰던 세숫대야가 놓여진 여름 목간도 있다.
유언대로 불일암 앞 후박나무 왼쪽 아래에 산골했다. 무소유의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소슬한 봄바람에 대나무가 스삭스삭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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