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불러준 대로 상고법원 설득전략 작성”
허백윤 기자
입력 2019 04 17 22:50
수정 2019 04 18 00:21
당시 심의관 지낸 현 법관, 공판서 증언
임, 우병우에 전화걸어 도와달라 말해보고서에 靑 관심 재판 내용·전망 언급
박상언 이메일엔 ‘박근혜 할매’ 지칭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정치권 인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개별 전략을 세웠다고 당시 심의관을 지낸 현직 법관이 증언했다. 특히 청와대가 상고법원에 비협조적일 것이라는 분위기가 법원행정처에 퍼지자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 심리로 17일 열린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는 “심의관들 사이에서 청와대가 사법부에 부정적 인식이 너무 강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상고법원을 설립하려면 현실적으로 청와대 설득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근무한 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2015년 3월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등 다수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시 부장판사는 거의 대부분의 문건들에 대해 “피고인(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이 불러준 대로 적기만 했다”고 답했다.
특히 문건들에는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질 것으로 판단된 사건들의 재판 진행 상황 및 전망 등이 담겼다. ‘한일 우호관계 복원’이 최대 관심사였던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의 상황을 보고하려다가 취소했고, 우 전 수석의 ‘반(反)법원 정서’가 상고법원의 걸림돌이라며 ‘우병우 민정수석 면담 기초자료’ 문건이 따로 작성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이 우 전 수석에게 직접 전화해 “우리 법원 너무 미워하지 말라. 상고법원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직접 봤다고 시 부장판사는 전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개입 사건과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 국회의원들이 기소된 사건에 대한 내용도 청와대 설득을 위한 전략 문건에 담겼다.
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도 면담했다. 박상언 당시 기획조정심의관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할매’로 지칭한 표현도 있었다. 박 부장판사가 ‘할매(의 사법부) 불신 원인은 정말 소설입니다’라고 시 부장판사에게 토로한 것이다.
시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협조를 얻기 위해 (청와대를) 설득하는 업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보고서 내용 중 일선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을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트윅, 무단 전채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