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용 재판 증인으로 나온 임종헌, 검찰 질문에 잇따라 “증언 거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연합뉴스
“제 형사사건에 유죄의 증거로 쓰일 우려가 있어서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 “잘 모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검찰의 신문에 대부분 이렇게 말하며 사실상 증언을 거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박남천)는 8일 유 전 연구관의 3회 공판에 임 전 차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다른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 전 차장은 유 전 수석과 공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김영재 원장 측의 특허소송 관련 자료를 청와대에 누설한 혐의를 받는다.

임 전 차장은 증인석에 서자마자 재판장이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증언거부권과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줄줄이 설명하자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의사는 없다”고 말한 뒤 증인선서를 했다.

그러나 정작 검찰의 주신문이 시작되자 과거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을 묻는 질문에서부터 “공소사실과 관련 없기 때문에 증언을 거부한다”고 답했다. 또 검찰이 “‘특허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불리한 판결을 받을 것을 우려해 대통령에게 민원을 제기했다’는 내용을 당시 곽병훈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전해듣고 이를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전달했느냐”고 묻자 “(김영재 원장의 부인인) 박채윤씨 관련 사건의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있고 제 진술이 제 사건에 유죄의 증거로 채택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증언을 거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검찰이 임 전 차장에게 청와대와의 접촉 경위나 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지시한 내용, 심의관들이 작성한 행정처 보고서가 청와대로 넘어간 과정 등을 잇따라 물었지만 그는 “같은 이유로 증언을 거부한다”고만 반복했다.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라 증인의 진술이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을 때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재판장께서 아는 대로 진술하라고 하면 하겠지만 마치 피고인신문 같은 증인신문이라 과연 적절한 신문인지 모르겠다”며 검찰을 향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오후에 진행된 유 전 수석 측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는 증언거부 대신 “기억이 안 난다”는 등의 답변을 이어갔다. 유 전 수석의 변호인이 “이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증인은 법관 및 기술심리관 정원 증원, 법관 재외공관 파견 확대 등을 위해 청와대가 요구하는 자료들을 받아내려 피고인(유 전 수석)과 공모한 걸로 돼있다”면서 “공모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임 전 차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 피고인과 논의한 적이 있나”, “기술심리관 좌석 배치니 특허법원 소송대리인 공정성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피고인과 한 번도 논의해 본 일이 없나” 등의 질문에도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부인했다. 김영재·박채윤 부부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강조했다.

임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오후 3시가 넘어서 끝났지만 그의 입에서 유 전 수석의 공소사실과 관련된 구체적인 설명이나 혐의를 반박하는 해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임 전 차장은 지난달 2일 자신의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법원에 낸 뒤 한 달 이상 법정에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임 전 차장은 지난 5일 서울고법에 다시 심리해 달라며 항고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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