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민간연대 빛났다···일본정부, ‘소록도’ 한센인 가족 보상 줄이어

일본 노동후생성, 국내 한센인 가족 10명 보상 결정

26일 국회 본관 제5영상회의실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한국 한센인 가족 보상청구 소송 경과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일 한센가족보상청구변호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행사는 한국 국회와 일본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함께 진행됐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이팔청춘도 아닌 노인에게 돈은 그리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어머니 대부터 고통받고 차별받던 사실을 인정받고 이제라도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강제 수용된 한센인 고 강팔봉씨의 아들 강선봉(83)씨가 26일 말했다. 아버지는 1929년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소록도로 끌려가 1936년 가까스로 탈출할 때까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수용소를 나온 뒤 한센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후유증으로 해방 전에 세상을 떠났다. ‘미감아’로 관리된 강씨는 소록도 환자지대 밖 보육원에서 자랐다.

지난해 4월 일본 정부에 국내 ‘1호’로 피해보상을 신청한 강씨는 지난 2월 보상이 결정됐다. 한국인 한센가족보상 청구가 인정된 다섯 번째 사례였다.

한국 한센가족보상 청구변호단은 “1차로 62명을 대리한 이후 현재까지 130여명이 보상청구를 했고 일본 노동후생성이 심사를 통해 10명의 한센인 자녀·동생에 대한 보상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1년간의 소송 경과를 설명하기 위해 국회 본관에서 진행된 한일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한센인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피해 보상이 이뤄지게 된 건 2019년 일본 의회가 한센가족보상법을 제정하면서다. 1945년 이전에 태어난 한센인 가족 중 현재 생존한 자에 한해 배우자와 자녀는 1인당 180만엔, 형제자매는 1인당 130만엔씩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보상이 결정된 박모(88)씨는 “부모님이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생한 것은 잘 알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을 이야기하는 건 아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1920년대 발병해 여수 애양원에 수용된 이후 199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가족을 대리한 이영기 변호사는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문제를 가족까지 확대 인정해 사과와 피해보상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일본 정부가 이를 계기로 다른 과거사 사건에도 전향적인 태도로 임할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박영립 한국 한센인권변호단 단장은 “일제가 소록도에서 저지른 잔혹한 인권침해는 한일 간 꼭 풀어야 할 한 맺힌 과거사였다”면서 “한일변호단과 시민단체가 민간 영역에서 18년이 넘는 연대 활동을 통해 성과를 이뤘고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한센인 격리정책에 따라 설립된 전남 고흥군의 소록도 수용소에서 환자들은 강제노역을 비롯해 생체실험과 강제단종, 낙태를 강요받으며 각종 인권유린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가 2001년 한센보상법을 제정한 이후 소록도에 격리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도 제기됐다. 한일 변호단과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2006년 법이 개정되면서 일제가 운영한 국외 수용소에 입소한 한센인도 보상 대상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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