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미투 폭로에 연예계 비상…“안전지대 없다”

유명 배우들 이름 거론…개그계 성추행 고발도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연예계에 비상이 걸렸다.

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상습적, 악질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해온 가해자들의 민낯이 공개돼 충격을 주는 동시에, 여기저기서 폭로가 나오면서 “안전지대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많은 기획사가 공식적으로는 “우리 소속 연예인들은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미 누구나 아는 유명 배우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거론되기 시작했고, 개그계의 고질적인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아직까지 배우 조민기나 영화감독 조근현 정도를 제외하고는 피해자의 신원이나 피해사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워 가해자들의 실명이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우후죽순 나오는 익명 폭로가 ‘무고’일 위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미투 분위기가 이어지고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오랜 세월 연예계에서 제재 없이 저질러졌던 성희롱, 성폭력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 소속사도 모르는 연예인의 뒷모습

배우 조민기의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는 조민기를 둘러싸고 이어지는 미투 고발에 대중 못지않게 경악한 상황이다. 조민기와 지난해 하반기 계약한 윌엔터는 성추문과 관련해 조민기의 말을 100% 신뢰하고 대처했다가 경찰이 수사에까지 나서는 상황이 되자 패닉 상태다.

윌엔터는 지난 20일 조민기 관련 첫번째 공식입장을 낼 때만 해도 “성추행 관련 내용은 명백한 루머고, 교수직 박탈과 성추행으로 인한 중징계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단정했다.

또한 “불특정 세력으로부터 언론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조민기는 결백을 밝히기 위해 법적 조치 여부도 생각했으나 가족들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과 상대가 학생이란 점을 고려해 최대한 대학 측에서 진상조사를 해주길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24시간도 안돼 낸 두번째 공식입장에서는 “지속해서 이어지는 조민기에 대한 성추행 관련 증언들에 대해 소속사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속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확인을 넘어 더욱 명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 조민기는 앞으로 진행될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소속 연예인 조민기와의 신뢰관계가 깨졌음을 드러낸 것은 물론이고, 조민기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필요함을 강조함으로써 연예인의 모든 면을 소속사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22일에는 인디 힙합 뮤지션인 던말릭(본명 문인섭·22)이 미성년자 팬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일자 소속사가 그를 퇴출했다고 발표했다.

소속사와 연예인은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지만 연예인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과거사를 파악하거나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기획사들은 행여라도 소속 연예인의 성추문이 드러날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 유명 배우들 이름 거론…방송사·영화사 노심초사

이런 가운데 유명 배우들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핵폭탄’으로 떠올랐다. 그들의 성추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중의 충격이 클 것은 물론이고, 출연 중인 작품들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방송사와 영화사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배우에 대해서는 20여년 전 연극판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는 인터넷 댓글이 나오자 곧바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또 다른 배우에 대해서는 2013년 방송현장에서 벌어진 성추행을 고발하는 익명의 인터뷰가 나왔다.

두 배우 모두 이니셜로 처리하긴 했지만 정상급 스타인데다 관련 기사를 보면 누군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설명이 달리고 있어 인터넷상에서는 뜨거운 감자다. 현재 양측 소속사는 연락을 일체 받지 않거나 “사실무근”이라고 답하고 있다.

한 방송사 홍보팀장은 23일 “지금은 사실무근이라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사실이 드러날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이들 배우가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활발히 하고 있어서 언제 터져도 작품에 큰 데미지를 입히게 될 텐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두 배우가 출연하거나 출연을 앞둔 작품의 제작진은 대책 회의에 돌입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대본 수정 등 플랜B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 기획사 대표는 “절대 우리 연예인은 그럴 일이 없다고 믿고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냐”며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명 배우는 아니지만 얼굴을 보면 아는 중년 남성 배우들에 대한 성추행 제보도 이어진다. 대부분 수년 전 일이고 가해자의 유명도가 떨어져 공개돼도 앞선 경우들처럼 파장이 크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사례를 통해 연예계 곳곳에 성폭력 뇌관이 묻혀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 “개그계에도 미투 바람이 불기를”

역시 익명이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1일 개그계에 만연된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개그계 역시 연극계처럼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한때는 후배에 대한 선배의 폭행이 심각한 문제가 됐을 정도로 각종 폭력이 자행되던 분야였다.

자신을 “2008년부터 2009년 초까지 대학로 Xxx홀에서 신인 개그맨으로 지냈다”고 밝힌 제보자는 여자 개그맨들이 상습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고발했다. 그는 “일단 제가 일년간 겪은 개그계 실상을 올려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올린다”며 “개그계에도 미투 바람 불어서 앞으로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글이지만, 개그계의 실태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방송사 PD들의 여성 연예인과 작가에 대한 성희롱, 성폭력을 고발하는 댓글도 이어진다.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으로, 이 문제도 역사가 깊다는 지적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하고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며 “이런 진통을 거쳐 세상이 좋아지는 거 아니겠냐. 지금은 연예계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면 거쳐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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