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조선인 전범’ 피해자 헌법소원 7년 만에 ‘각하’
최훈진 기자
입력 2021 08 31 15:58
수정 2021 08 31 16:01
헌재는 31일 “한국인 전범들에게는 국제전범재판소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은 특별한 피해가 존재한다”면서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등이 갖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 청구권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헌재는 “전범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과는 관련이 없어 정부가 이 협정 3조에 따른 분쟁해결 절차에 나아가야할 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외교적 경로를 통해 수차례 일본 의원을 만나고, 국과장급 협의를 진행해 보상입법을 추구하는 등 조치를 이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석태·이은애·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에 대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위헌으로 봐야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다만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한 피해 부분에 대해서는 각하 결론에 찬성했다.
재일 한국인 전범 생존자 모임인 ‘동진회’ 회원과 전범 유족은 2014년 우리 정부가 자국 출신 전범 문제를 방치해 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전쟁 당시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일본군에 동원됐다가 종전 후 실시된 전범 재판에서 포로 학대 등 혐의로 기소돼 B·C급 전범으로 분류됐다. B·C급 전범은 상급자 명령 등에 따라 고문과 살인 등을 행한 사람들을 뜻한다. 128명 중 23명이 사형을 당했고, 125명은 유·무기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출소했지만 전범이라는 낙인 탓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평생 고통을 겪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1955년 일본에서 동진회를 설립해 1991년 도쿄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국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1·2·3심 모두 패소했다. 우리 정부는 2005년 한일수교회담 문서를 공개해 제1차 한일회담(1952년) 당시 조선인 전범에 대한 일본 정부 방침이 ‘그것은 별개 문제이니 별도 연구할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 이후 조선인 B·C급 전범 처리 문제는 일본 정부와 제대로 된 협의 없이 방치됐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었다.
앞서 헌재는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두고 한일 양국간 분쟁이 있음에도 정부가 해결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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