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고종 외교자문 데니 관저 자리에 표석이라도…”
박승기 기자
입력 2021 04 22 14:55
수정 2021 04 22 14:59
송명호 문화재전문위원 22일 데니 관저 첫 공개
데니 태극기, 외국인 외교 고문 역할 역사 찾기
“보지 못한 태극기의 아픈 역사, 유물 부족 아쉬워”
“데니 고문이 머물렀던 관저 자리에 작은 표석이라도 세워 그의 활동을 기억하면 좋겠다. 데니 태극기와 조선 외교 상황에 대한 역사 찾기 의미도 있다.” 송 위원은 “오래된 사진을 디지털 복원한 결과 관저가 경희궁 끝자락에 위치했고 주변에 국기 게양대도 설치돼 있었다”며 “궁내 숙소를 제공한 점에서 데니에 대한 고종의 신뢰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저와 게양대는 귀국 후 일제가 총독부 관사를 지으면서 사라졌다. 송 위원은 당시 관저 위치가 서울 종로 새문안로3길 15 동원빌딩 자리로, 게양대는 새문안로5길 19 로얄빌딩으로 추정했다. 그는 “보물이나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것보다는 구한말 조선의 외교 전면에 섰던 이방인을 기억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태극기 연구가인 송 위원은 태극기의 아픈 역사를 강조했다. 국기가 제정·공포된 것은 1883년이지만 당시 국기 제작 방법을 명시하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됐다. 현재의 태극기는 1949년 10월 15일 ‘국기 제작법 고시’를 통해 정해졌는데 당시 파악된 태극기만 48종에 달했다. 송 위원은 “일제가 국기 사용을 막다 보니 국민들이 듣기만 했을 뿐 태극기를 본 적이 없어 발생한 현상”이라며 “태극기 역사를 알릴 박물관이 필요하지만 6·25전쟁 등을 거치며 많은 유물이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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