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이 날아다녀”… 47년 된 최고령 헬기 참변
1989년 13명 사망사고 같은 기종
이륙 80분 만에 양양 야산서 추락
주민들 “산불 방송 2~3초 뒤 퍽”
“탑승자 2명” 비행계획 전화 신고
20대 정비사와 여성 2명은 누락
산림헬기 66% 31대가 20년 넘어
27일 강원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0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한 야산에 헬기 1대가 추락했다. 기장 이모(71)씨와 부기장 김모(54)씨, 20대 정비사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 2명 등 탑승자 5명이 사망했다. 사고는 산불 취약지 예방 활동을 벌이는 산불 계도 비행 중 발생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속초시 노학동에 있는 계류장(옛 강원도 수련원 주차장)에서 이륙해 양양 방향으로 비행하던 헬기는 이륙 1시간 20분 만에 추락했다. 추락 원인은 조사 중이다. 이날 양양 지역에는 초속 1.2m(남동)의 약한 바람이 불었다.
헬기는 추락 직후 산산조각 나 불에 탔다. 헬기에서 시작한 불은 산으로 옮겨붙었으나 소방대에 의해 20분 만에 진화됐다. 구조대는 헬기 발화 지점 근처에서 이씨 등 사망자 2명을 수습한 뒤 오후 1시쯤 사망자 3명을 더 찾았다.
사망자가 애초 2명으로 추정된 것과 달리 5명으로 늘어난 데는 비행계획 신고 시 3명에 대한 정보가 빠졌기 때문이다. 기장 이씨는 이날 오전 8시 51분 양양공항출장소에 전화를 걸어 ‘정시(오전 9시)에 산불 계도 비행에 나서며 탑승자는 2명’이라는 내용을 알렸다. 양양공항출장소는 관제시스템에 해당 내용을 입력했다. 결국 비행계획서에 탑승 인원이 ‘2명’으로 표시되면서 관계 기관들은 모두 2명이 사고를 당했다고 추정했으나, 현장에서는 5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헬기는 지상에 떨어진 뒤 화염과 함께 여러 차례 폭발했다. 이 충격으로 10m 떨어진 민가의 유리창이 부서지기도 했다. 프로펠러 등 사방으로 흩어진 각종 기체도 화염에 새카맣게 탔다. 주민들은 “집에서 헬기가 산불 방송하는 것을 들었는데, 불과 2∼3초 뒤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추락 헬기는 속초시와 고성·양양군이 산불진화 등을 위해 공동 임차했다. 민간업체 소유의 S58T 기종이다. 임차 단가는 하루 380만원이다. 특히 사고 헬기는 미국 스콜스키사가 1975년에 제작한 노후 헬기로 밝혀졌다. 민간 화물운송회사에서 사용하려 수입했고, 현재는 산불 진화 등에 사용된다. 사고 헬기는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항공기 중 최고령으로 국내에는 같은 기종이 5대 정도 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7월 경북 울릉에서 영덕으로 가던 같은 기종의 헬기가 추락, 탑승자 20명 중 13명이 숨졌다.
30년 경력의 현역 조종사 A씨는 “사고 기종은 조종사들도 처음 들어 보는 ‘유물’처럼 오래된 것”이라면서 “민간업체 4~5곳에서 위험한 노후 헬기를 가지고 지자체를 상대로 산불 감시 및 진화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군에서 전역한 조종사들은 소방, 해경, 산림청 등으로 취업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민간업체 조종사의 고령화도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림헬기 47대 중 20년을 초과한 ‘경년항공기’는 31대(66.0%)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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