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살해한 사실도 잊어버린 피고인… “치료경과 지켜본 뒤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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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첫 ‘치료 구금’ 의미와 과제

“엄마는 어디 갔냐” 묻는 중증 치매환자
‘구속 후 사회 복귀는?’ 고민에서 시작
검찰 “중대 범죄자 처벌 간과해선 안 돼
병원 구금할 근거 명확하지 않아” 지적
치료감호기관 1곳뿐… 체계적 치료 한계


아내를 살해한 사실도 잊고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묻는 중증 치매환자. 법원은 이 사람에게 과연 형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했다. 몇 년 구속됐다 나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가 19일 시도해 보겠다고 선언한 ‘치료 구금’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

중증 치매와 과대망상 증상이 있는 이모(67)씨 측은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대신 양형이 무겁다는 이유로만 항소했다. 아들은 “단순히 형량이 높다, 낮다는 게 아니라 질병이 있는 환자 입장에서 재판을 받는 게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 달라는 뜻으로 항소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 주소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곧 잠을 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녀들은 피해자의 자녀들이기도 하다”며 치료가 시급하다고 말하는 이씨 자녀들의 복잡한 심정에 공감했다. 또 “2017년 9월 대통령이 ‘치매 국가책임제’를 밝혔고 국가에서도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며 이씨 또한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 치매환자임을 강조했다. 5년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구속돼 있다가 석방되면 오히려 가족관계는 물론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됐다.

다만 치료 구금이 실행되기까지는 여러 벽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부터 반발했다. 검사는 “치료도 중요하겠지만, 사안의 중대성이나 범죄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면서 “치료 감호가 가능한지 알아보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치료 감호는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검찰의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여 판결 선고와 함께 명령하는 제도다. 그러나 공주 치료감호소가 유일한 치료감호기관으로 많은 질병을 체계적으로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치매는 치료감호 대상 질환이 아니다. 재판부는 검찰에 치매 환자도 치료감호가 가능한지를 먼저 알아볼 것을 요구했다. 국가가 도울 수 없다면 가족의 힘으로 이씨가 치료를 받도록 하자는 게 재판부의 생각이다. 대신 관리가 가능하도록 보석제도를 활용해 판결 선고 전에 일반 병원에 피고인을 사실상 구금하고 재판부가 병원과 소통해 치료 과정을 지켜본 뒤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회복적·치료적 사법’ 개념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법제도를 단순한 처벌에만 활용하지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치유해 사회로 온전하게 복귀시켜야 한다는 개념이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인천지법 부천지원장을 지내던 2013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충분한 사과를 하고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는 취지의 ‘형사 화해제도’를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이씨 가족에게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씨의 아들은 “여러 병원을 물색해 봤지만 아버지의 범죄 사실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며 재판부에 가능한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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