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버려진 유기견 ‘덩이’… 번아웃된 날 일으켜세웠다
강동삼 기자
입력 2023 01 21 08:19
수정 2023 01 21 21:27
선천성 심장병 둥 병 앓아 수술비 1000만원 넘어
그래도 심신이 지친 날 일으켜 세워준 벗이자 친구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 사람이 상처 보듬어줘야
공항 흡연구역에 버려진 복실이 덩치가 너무 커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가고 아내는 호텔도 그만 둬
내인생을 바꿔… 샵보다 유기견 입양해주세요 호소
항공사들 제주노선서 연 1만마리 반려동물 운송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 사람들이 다시 입양해 상처를 보듬어줬으면 좋겠어요.”2019년 4월 어느날 공항 근처에서 버려진 믹스견(포메라니안)을 입양해 키우는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재무관리부 김채원(31) 대리가 지난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렌터카 업체 근처에서 버려진 덩이…선천성 심장병과 다리 다쳐 병원 들락날락
이젠 한가족으로 무척 밝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덩이’(복덩이에서 따온 강아지 이름·10~11세)는 처음 제주국제공항 3층 안내센터에 관광객이 렌터카업체 근처에서 주웠다며 맡긴 유기견이다. 김 대리는 “동물보호센터(유기견센터)에 연락한 사이 몇시간 동안 돌보는데 간식을 줘도 짖지도 않고 빤히 나만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면서 “안락사될까봐 입양 신청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입양 신청해도 바로 처리 안됐다. 우선 절차상 일주일간 공고를 내서 새주인을 만나지 못해 입양이 안됐을 경우 입양 자격이 주어지는데 다행히 운명처럼 인연이 됐다”고 덧붙였다.
‘덩이’는 복덩이기도 하지만 처음엔 ‘돈덩어리’였다. 심장사상충에 걸린 건 물론이거니와 오래 전에 다리가 부러졌는데 치료 시기를 놓쳤는지 다리가 휘어져 있었다. 병원에 들락날락하던 중 덩이가 선천적으로 심장까지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결국 서울 유명병원을 찾아 수백만원이 드는 수술을 해야 했다.
#번아웃된 날 일으켜 세워준 소중한 친구…수술비 1000만원도 아깝지 않았어요
김 대리는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업무가 바뀌어 매일 밥 먹듯 야근하다 보니 심신이 지친 상태였는데 ‘덩이’가 내 삶에 활력을 줬다. 빨리 일을 마치고 퇴근해 ‘덩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했다. 번 아웃 됐을 때 강아지는 나를 위로해 준 유일한 친구이자 벗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다행히 그때 성과금이 나와서 덩이를 치료할 수 있었다”며 깔깔 웃었다. ‘덩이’는 이후에도 자궁절제수술까지 하는 등 병원비로 1000만원은 족히 나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 ‘내 어깨위의 고양이 밥’(제임스 보웬 실화 동명소설 영화화)처럼 김 대리는 ‘덩이’를 만나 삶을 위안 받았고 ‘덩이’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다시 치유받고 있는 지 모른다.
김 대리는 “버려진 개들이 가끔 집을 찾아올 때가 있다는 말에 정말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강아지를 제주도에 버리는 걸까요”라며 되물었다.
제주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예전엔 아주 간혹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동물등록이 늘면서 비행기를 태워 제주 까지 와서 버리는 일은 이젠 거의 생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동물보호센터는 그러나 제주 곳곳에서 날마다 20마리의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상황이다. 25일 동안 유기견을 보호하는데 그중 10일 동안은 원래 주인을 찾는 법적인 기간이다. 이 기간이 지나야 새 주인을 찾아 입양할 수 있다. 만약 새 주인을 25일 동안에 만나지 못하면 결국 안락사 절차를 밟게 된다.
#제주공항 흡연실에 버려진 복실이… 덩치 커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
그러나 서울신문이 공항에서 버려진 반려견을 키우는 또 다른 공항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현재 김포공항에서 토목조경부 업무를 맡고 있는 박현찬(44)차장으로 제주공항 근무 당시 공항에 버리고 간 복실이(올드잉글리쉬쉽독)를 7년째 키우고 있다. 실제 공항 흡연실에 묶어 두고 주인이 사라진 경우다.
처음엔 직원들이 공항 야외공간에서 한달을 키우고 주인을 기다렸지만 끝내 데려가지 않았다. 박 차장은 동물보호센터에 보내면 안락사된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입양했다. 푸들을 키우고 있던 박 차장의 부인은 이 입양한 강아지 때문에 직장(호텔근무)도 그만뒀을 정도다. 덩치가 큰 복실이가 박 차장 부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다. 반려견을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갈 정도였다. 제주에서 5년 살다가 김포로 이사갈 때도 1순위가 테라스라도 있는 집이었고 그런 집으로 구했다.
박 차장은 “공항에 개를 버리는 사람들의 심리는 그나마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버려 누군가가 입양해 키워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라도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으면 펫샵에서 사지 말고 꼭 유기견을 입양해주기를 바란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반려동물 1500만시대… 대한항공 한해 반려동물 운송 1만마리 넘어
우리 사회는 반려동물 인구 1500만명 시대에 접어 들고 있다.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이 세상의 유일한 생명’이 바로 반려견이라는 얘기도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펫팸족(Pet+Family)이 늘어나면서 반려견과 동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실제 설 연휴를 앞둔 20일 공항에는 여기저기서 ‘멍멍’ 짖는 소리가 유독 많이 들렸다. 4일 긴 연휴동안 마땅히 맡길 곳도 없고 혼자 남겨 둘수 없는 상황이라 결국 여행을 함께 가는 중일 것이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제주노선에 지난해에만 1만 983마리의 반려동물을 항공 수송했다. 전년 9518마리보다 1465마리가 늘어났다. 고영대 대한항공 홍보차장은 “여행길 반려견과의 동행이 늘어나면서 항공사들마다 반려견 운송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대한항공은 반려동물과 여행할 때마다 모은 스탬프가 6개가 되면 국내선 1구간 50% 할인, 12개는 국내선 1구간 무료 운송 또는 국제선 1구간 50% 할인, 24개를 모으면 국제선 1구간 무료 운송 혜택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 1년새 10배 가까이 운송 증가… 반려견 탑승예약도 모바일앱으로
제주항공을 이용해 여행을 떠난 반려동물의 운송 건수는 2021년 2334건에 불과했으나 2022년 2만 1389마리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 관계자는 “지난 2021년 11월 12일부터 기내 동반탑승 반려동물 무게를 용기 포함 5㎏에서 7㎏으로 완화하고 편당 최대 탑승 수도 3마리에서 6마리로 늘렸다”면서 “탑승 예약도 모바일앱으로 할 수 있게 되는 등 편리한 점이 많아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반려동물 운송도 1만 마리를 넘었다. 국내선 2021년 1만 8300마리에 이어 2022년 1만 8513마리를 운송했다. 티웨이항공은 반려묘·새까지 포함한 반려동물 운송건수는 2021년 1만 2303마리에서 2022년 1만 5609마리로 늘었다. 그만큼 점점 반려동물과 동행하는 여행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고 있다.
#제주도 유기동물 지난해 4977마리…등록칩·중성화수술로 유기율 점점 감소
한편 동물등록제와 중성화수술이 보편화되면서 유기견 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실제 제주도에 따르면 유기동물 발생현황은 2019년 7767마리에서 2020년 6642마리로 14.4%가 줄었으며 2021년 5364마리(19.2% 감소), 2022년 4977마리(7.7%감소)로 매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제주도는 동물등록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반려동물 등록칩과 수수료 무료 지원기간을 내년 12월말까지 2년 더 연장하고 있다. 또한 새해부터 읍면지역 실외견(마당개)의 의도치 않은 임신 예방으로 유기견 발생을 감소시키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중성화 수술비 무료 지원을 기존 읍면지역에서 읍면동지역까지 확대하고 있다. 현재로선 유기견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최선의 방법이 이 두가지다. 그러나 망각해선 안될 게 있다. 반려견은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가족은 버리지 못하고, 버릴 수 없는 것이 가족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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