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혹함 속에서도 “온 세상 기쁨 함께하길” 유가족 한 마디에 울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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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의 튀르키예 취재기
참혹함 속에선 의식주도 사치···도시 전체가 폐허
시신 기다리던 가족들은 도리어 “기쁨 있길” 응원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지진이 발생한지 닷새째인 지난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한 건물 잔해에서 구조대가 생존자를 찾고 있다. 무너진 콘크리트와 벽돌 잔해 속에 뒹구는 침대 매트리스와 신발, 공책 등 일상적인 생활 용품만이 이 곳이 지진 전 주거지였음을 보여줬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진이 발생한지 닷새째인 지난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한 건물 잔해에서 구조대가 생존자를 찾고 있다. 무너진 콘크리트와 벽돌 잔해 속에 뒹구는 침대 매트리스와 신발, 공책 등 일상적인 생활 용품만이 이 곳이 지진 전 주거지였음을 보여줬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제일 빠른 비행기는 내일 모레입니다.”

튀르키예에 강도 7.8의 지진이 발생한지 나흘째였던 지난 9일(현지시간) 오전 5시. 이스탄불 공항에서 아다나행 항공편의 탑승 수속을 밟던 기자에게 항공사 직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전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미리 예매해 결제까지 해둔 항공편이 결항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공항 곳곳에선 기약없이 표를 기다리던 튀르키예인들이 ‘가족에게 빨리 가야한다’며 애타는 목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다.

당시 주요 지진 피해 지역인 튀르키예 남부의 하타이 공항과 가지안테프 공항 등은 모두 지진 여파로 폐쇄돼있던 상황. 직원에게 애원해 취소표를 겨우 잡은 그 순간부터 튀르키예 지진 참사를 취재한 일주일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피해가 극심한 하타이주에 들어가기 전, 일주일치 기름을 사두기 위해 아다나의 한 주유소에 들렀는데 주유소 직원은 하타이까지 가려면 5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고 나와 있었지만 그걸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새벽 4시에 출발했지만 도로 위엔 피난민과 구급차, 중장비 차량이 뒤엉키면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불이 켜진 휴게소마다 모든 식량이 동나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무너진 건물에 가로막혀 돌아가는 일도 허다했다.
지진 닷새째인 지난 10일 튀르키예 아다나에서 하타이주로 들어가는 도로 옆 휴게소에 식량이 모두 동이 나 있다. 피해가 극심한 지역 중 한 곳인 하타이주에서는 가게나 식당이 무너지고 수도, 가스 연결이 차단돼 하타이주 외곽에서부터 생필품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을 섰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진 닷새째인 지난 10일 튀르키예 아다나에서 하타이주로 들어가는 도로 옆 휴게소에 식량이 모두 동이 나 있다. 피해가 극심한 지역 중 한 곳인 하타이주에서는 가게나 식당이 무너지고 수도, 가스 연결이 차단돼 하타이주 외곽에서부터 생필품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을 섰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어렵게 도착한 하타이주의 건물은 ‘팬케이크’처럼 위층부터 차곡차곡 무너져 있었고 콘크리트와 벽돌은 가루가 돼 있었다. 튀어나온 철근 사이로 식기, 유아차, 욕조, 시계부터 누군가의 다이어리까지 생의 흔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노숙 중인 주민들은 구조대가 지나갈 때마다 ‘이 안에 가족이 있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닥불 타는 냄새와 흙먼지 냄새 그리고 우유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게 건물 잔해 어딘가에서 시신이 부패하며 풍기는 냄새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숙소를 구할 수 없다보니 밤에는 차 안에서 추위를 견디며 쪽잠을 청해야 했다. 밤마다 흙먼지에 머리카락이 버석거리고 얼굴을 닦은 물티슈가 흙먼지로 누런 색이 됐지만 ‘차박’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운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째엿던 1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의 잔해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노숙을 하던 주민들이 건물 아래 깔린 가족의 시신이 수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건물 앞에는 수습된 시신을 급조된 공동묘지로 이송할 시신 운반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카라만마라슈 곽소영 기자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째엿던 1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의 잔해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노숙을 하던 주민들이 건물 아래 깔린 가족의 시신이 수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건물 앞에는 수습된 시신을 급조된 공동묘지로 이송할 시신 운반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카라만마라슈 곽소영 기자
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기자는 일주일 후면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이방인’이었지만 현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언제 복구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견뎌야만 했다.

몸보다도 마음이 무거웠다. 매일 취재가 끝나면 현지인 운전기사와 통역사, 기자가 함께 타고 돌아가던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백발이 성성한 운전기사 사마안띳(67)은 “편하게 먹고 자는 게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다”며 밤마다 잠을 설쳤다. 취재 마지막 날에는 기자를 아다나 시내 호텔로 데려다준 뒤 가족들이 머무는 텐트촌으로 돌아갔다. 사마안띳은 이번 지진으로 충격이 커서 당분간 일을 못할 것 같다며 회사에 휴직 신청을 했다. 비참한 현실을 함께 목격하고 한국어로 전하는 통역사 베이사(25)도 취재 내내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에서 취재를 마친 뒤 통역사와 기자의 얼굴을 닦은 물티슈에 흙먼지가 묻어있다. 수도가 끊긴 현지 주민들은 물티슈로 얼굴을 닦고 버스정류장 등에 담요를 덮어 만든 간이 텐트로 추위를 버텼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난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에서 취재를 마친 뒤 통역사와 기자의 얼굴을 닦은 물티슈에 흙먼지가 묻어있다. 수도가 끊긴 현지 주민들은 물티슈로 얼굴을 닦고 버스정류장 등에 담요를 덮어 만든 간이 텐트로 추위를 버텼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절망 속에서도 셋이 함께 웃었던 유일한 순간은 그곳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텐트촌이나 대피소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거나 잔해 속에서 한국 드라마인 ‘오징어게임’ 인형을 꺼내와 보여줬다.

구호식품을 나눠주는 푸드트럭을 취재하던 기자가 줄을 기다리는 것으로 착각한 이재민 수십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받으라’며 홍해처럼 길을 비켜줘 얼떨결에 빵을 받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차나 음식을 건네는 이재민들의 호의를 거절한 적이 스무번은 넘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진앙지 인근인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들을 위한 스프를 끓이고 있다. 취재를 다니는 기자에게 이재민들과 봉사자 할 것 없이 현지인들은 차나 음식을 건네며 도리어 응원의 말을 해줬다.
가지안테프 곽소영 기자
지난 12일(현지시간) 진앙지 인근인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들을 위한 스프를 끓이고 있다. 취재를 다니는 기자에게 이재민들과 봉사자 할 것 없이 현지인들은 차나 음식을 건네며 도리어 응원의 말을 해줬다. 가지안테프 곽소영 기자
일주일동안 들었던 말 중 가장 따뜻한 말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서 들었다. 스무살 조카의 시신이 꺼내지길 기다리며 홀로 잔해 앞에 앉아있던 오즐람(45)은 먼 길을 떠나는 기자를 껴안으며 튀르키예식 전통 인사로 양볼을 차례로 맞댄 뒤 “온 세상의 기쁨이 너와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릴 튀르키예인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온 세상의 기적이 튀르키예와 함께하기를.

아다나·안타키아·가지안테프·카라만마라슈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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