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없을땐 냉면보다 싼 밀면 드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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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름철 대표 음식 ‘밀면’의 어제와 오늘

6·25전쟁 때 탄생한 밀면은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 피란 음식이자 향토음식이다.당시 미군 원조품인 밀가루에 감자가루(전분)를 섞어 면발을 만들어 ‘밀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은 밀면
6·25전쟁 때 탄생한 밀면은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 피란 음식이자 향토음식이다.당시 미군 원조품인 밀가루에 감자가루(전분)를 섞어 면발을 만들어 ‘밀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은 밀면
“서울에 냉면이 있다면 부산에는 밀면이 있다!”

장마가 물러가고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가만히 있어도 얼굴과 등에 땀이 줄줄 흐른다. 사뭇 입맛도 잃어버린다. 부산에서는 이럴 때 밀면 한 그릇으로 더위를 싹 날려버린다. 살얼음 둥둥 뜬 벌건 국물에 담긴 면을 젓가락으로 후루룩 한입 빨아당기면 입안에 만족감이 퍼진다. 여름이면 거의 매일 점심 때 밀면을 먹는다는 김종규(46)씨는 “부산을 대표하는 여름철 음식인 밀면은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 데 최적화된 메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6·25전쟁 때 실향민들이 메밀 구하기 어려워 ‘밀가루 ·전분’ 섞어 만들어

밀면은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의 대표 피란 음식이자 향토 음식이다.
6·25전쟁 때 탄생한 밀면은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 피란 음식이자 향토음식이다.당시 미군 원조품인 밀가루에 감자가루(전분)를 섞어 면발을 만들어 ‘밀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은 비빔 밀면.
6·25전쟁 때 탄생한 밀면은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 피란 음식이자 향토음식이다.당시 미군 원조품인 밀가루에 감자가루(전분)를 섞어 면발을 만들어 ‘밀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은 비빔 밀면.
밀면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6·25전쟁 때 부산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실향민들이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어려워 미군 원조품인 밀가루에 감자가루(전분)를 섞어 면발을 만들어 ‘밀면’이라는 이름으로 냉면 대신 먹었다고 한다. 원래 ‘밀 냉면’, ‘경상도 냉면’ 등으로 불렸으나 사람들이 ‘밀면’으로 줄여 부르게 됐다는 말도 있다.

백과사전에는 밀가루와 전분을 넣고 반죽해 만든 국수, 6·25전쟁 때 만들어진 음식으로 부산의 대표적 향토 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밀면의 원조는 1952년 개업한 남구 우암동 ‘내호 냉면’이라는 게 정설이다. 창업주는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이다. 1960년대부터 진구 가야동에서 영업해 온 ‘가야 밀면’은 지명도가 더 높다. 대부분 밀면 집 상호에 ‘가야’라는 두 글자가 빠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원기 국제밀면 사장은 “밀면은 원래 피란민들이 고향에서 즐겨 먹던 냉면을 밀가루를 대신 사용해 만든 게 시초”라며 “이후 부산의 대표적 향토음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냉면의 아류?… 쫄깃한 면발에 육수는 냉면과 같은 듯 다른 맛

부산사람 대부분은 냉면 대신 밀면을 먹는다. 심심한 맛의 평양냉면과 달리 자극적인 밀면의 맛이 부산사람 입맛에 더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산에는 냉면집이 많지 않다. 냉면보다 비교적 경제적이면서 맛도 뒤지지 않는 밀면이 대체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대중 음식으로 불린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당시 냉면은 밀면보다 배 이상 비싼 고급음식이어서 서민들은 냉면 대신 값싼 밀면을 즐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밀면을 냉면 아류라고 한 단계 아래 음식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쫄깃한 면발과 육수는 냉면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맛을 낸다. 마치 담백한 맑은탕과 자극적인 매운탕의 차이랄까?”

밀면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표적인 부산 음식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 들어 인근 경남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했다. 2009년엔 부산시의 대표 향토 음식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부산의 한 밀면 집이 서울에 진출했으나 냉면의 아성에 밀려 철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강렬한 맛을 즐기는 부산사람과 달리 담백하고 싱거운 음식을 즐기는 서울 등 타지역 사람들의 입맛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평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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