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간판 바꾼 향판? 인사 논란 불식?
이민영 기자
입력 2018 04 11 22:52
수정 2018 04 12 01:21
권역법관으로 부활하는 지역법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권역법관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대법원에 건의하면서 2015년 폐지된 지역법관제도가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판사들이 한 지역에 정착하면 재판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과 지역 고착화로 인한 법조 비리를 우려하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11일 법원에 따르면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좋은 재판과 법관전보인사·권역법관제도’를 의결하고 “좋은 재판을 제공하기 위해 권역법관제도(한 지역에 장기간 근무하는 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관회의 관계자는 “일본을 제외하고 법관이 전국 순환 근무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며 “권역법관제도를 시행하면 전보 인사에 대한 우려 없이 재판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관 인사는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을 2년간 순환하는 ‘경향(京鄕) 교류’를 원칙으로 한다. 향토법관 제도는 해당 지역 출신 법관들이 그 지역에서만 계속 근무하는 것으로 2014년 황제 노역 사건으로 논란이 됐다. 당시 광주 지역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한 재판장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1일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계산했다. 2004년 도입한 지역법관은 향토법관과 유사하지만 최소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황제 노역 사건으로 향토법관이나 지역법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다음해인 2015년 인사부터 폐지됐다.
결국 지방 순환 근무가 확대됐고, 지방 근무가 잦아진 판사들의 원성이 이어졌다. 한 부장판사는 “예전에는 지법 부장을 달면서 한 번만 지방에 갔다 오면 됐는데 이제는 서울 근무를 마치고 나서 지방 근무를 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법 판사도 서울에서 5년 근무하면 지방 근무를 해야 되고, 서울가정법원에서만 근무하던 가사소년전문법관도 지방 순환이 의무화됐다. 지역법관 폐지 이후 한 지역에 원칙적으로 7년 이상 근무할 수 없고, 다른 권역에서도 2년을 근무해야 한다. 아직 강제 시행은 아니어서 전체 판사 2937명 중 약 240명이 지역법관으로 남아 있다.
판사들 대다수는 권역법관 도입을 반기는 눈치다. 판사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결하고, 통상 2~3년마다 이동하는 인사에서 벗어나 재판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법관회의 관계자는 “1차 회의에서 지역 토착 비리 등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논의했다”며 “법관윤리강령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법관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법조계 관계자는 “지역 토호와 유착 등 부작용으로 폐지된 향판 제도가 4년 만에 부활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불공정 재판 우려를 먼저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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