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인 노린 성범죄 5년새 44% 증가
이성원 기자
입력 2020 10 21 22:46
수정 2020 10 22 03:20
홀로 사는 노인, 성범죄 무방비 노출
사회적 편견에 2차 피해… 신고 꺼려
지난해 11월 10일 새벽 전남 목포시의 한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남성 A씨가 할머니의 집으로 불쑥 들어왔다. 술에 취해 때마침 잠기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이 집에는 83세 여성이 혼자 살고 있었고,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A씨는 다짜고짜 성폭행을 시도했다. 여성이 강하게 거부하자 A씨는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과 상반신을 수차례 때렸고, 유사강간도 시도했다. 결국 A씨는 경찰에 붙잡혀 지난 5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양형을 판단할 때 피해자가 노약자라는 점이 가중 요소로 인정됐지만, 술에 만취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 등을 인정받아 3년형에 그쳤다.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최근 5년간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사회 진입으로 노인 인구가 급증한 데다 여성 노인 혼자 거주하는 등 성범죄 표적으로 쉽게 노출되고 있어서다. 28세 남성 물리치료사에게 성폭력을 당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담은 영화 ‘69세’의 주인공처럼 ‘노인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회적 편견에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1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60세 이상 노인 대상 성범죄 검거 현황에 따르면 2015~2019년 사이 총 3442건의 노인 대상 성범죄가 발생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검거 수는 증가했는데, 2015년 565건에서 2016년 599건, 2017년 698건, 2018년 765건, 2019년 815건으로 최근 5년간 44.2% 증가했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강간·강제추행이 3185건(92.5%)으로 가장 많았다.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이 95건(2.8%), 나체 사진을 보내는 등 통신매체 이용 음란 128건(3.7%), 공공 화장실 등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이 34건(1.0%)이었다.
문제는 노인 대상 성범죄는 수면 위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이 무슨 성폭력 피해자야’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피해 여성들이 용기 내 신고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최선애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실제 노인 대상으로 상담해 보면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사회적 통념 때문에 경찰 신고까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이를 고려하면 드러나지 않은 노인 성폭력은 훨씬 많을 것”이라며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경찰 수사 단계부터 구체적 수사 지침이나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고, 이들은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성폭력 피해 이후 구제 절차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노인의 인권도 중요한 사회적 가치인 만큼 경찰이나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가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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