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버스를 기다리며 나무 아래 서 있다. 어제와 사뭇 다른 바람이 분다. 끈적이지 않는 바람이다. 차진 온도의 바람이다. 계절을 일컬어 곧 다르게 이름 불러야 할 때가 이토록 정직하게 오는구나.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모래가 일어나고 풀이 일어나고 버려진 검은 비닐봉지가 일어나고 내 팔뚝에 닭살이 일어난다. 대관절 무엇을 어떻게 밀어버릇했기에 바람은 내 안팎으로 무엇이든 일어나게 하는 걸까.
저기 앞서 굴러가는 검은 비닐봉지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 집게 하는 것도 바람이다. 그 검은 비닐봉지를 보자마자 최정례 시인의 ‘1초 전에는 오리’라는 시를 떠올리게 한 것도 바람이다.
“골목을 돌아 걷는데/짧게 꽥/한 마리 오리가 울었다/문득/날개를 펄럭거렸다//순간 땅을 박차고 오르는 날개//1초 전의 틈 속으로/오리는 사라졌다//그렇게 착각하시라고//오리가 있었다” 길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주운 날이면 집에 와 시집부터 찾게 되는 거, 그거 바람이 시킨 상상력 공부 중 하나일 거다.
여기 옷장 문을 절로 열게 하는 것도 바람이다. 옷걸이에 줄줄이 걸려 있는 옷과 옷 사이 얼굴을 디밀어 옷의 길이를 재고 옷의 소재를 살피고 옷의 유행을 따지고 옷의 수명을 가늠하고 여기 없는 새 옷을 향한 욕망까지 품게 하는 것도 바람이다. 사람에게든 사랑에게든 유난히 팔을 시리게 하는 냉대를 경험한 날이면 집에 와 옷장부터 열게 하는 거, 그거 바람이 시킨 치유 노동 중 하나일 거다.
안 보이는 몸으로 내 몸을 공부시키는 바람. 안 보이는 몸으로 내 몸을 운동시키는 바람. 그래서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진리 삼아 많은 이들이 변주해 가며 노래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기실 바람이라는 건 또한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니까.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도 하지 않았나.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고전이 유행이고 책 읽기 좋은 때니 손에 들리는 대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편다. “진리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30년 전 밑줄 쫙 그은 문장은 왜 30년 뒤에도 밑줄 쫙쫙으로 나를 반기나.
책 읽다 말고 다급히 리모컨을 찾는다. 정치고 경제고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뉴스거리를 지나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중계 채널에 멈춰선 건 내 안에 어떤 정화가 필요하다는 걸 내 몸과 마음이 성큼 앞서 느껴서일 거다. 땀으로 범벅인 선수들을 보라. 공인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보라. 각종 경기의 룰 앞에 항복을 맹세한 선수들을 보라. 맨몸 대 맨몸으로, 공 대 공으로, 점수 대 점수로, 1초 대 1초로, 이김과 짐 앞에 그들이 취하는 자세의 단순함을 보라.
집요하게 반복한 동작에서 성실하게 계속된 훈련에서 ‘최선’은 탄생할 것이니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선물하고픈 시집이라면 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박박 우겨야 하는 먹고사는 출판쟁이의 계절이니 어쩔 수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