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산타는 여기에 산다
류재민 기자
입력 2018 12 23 16:18
수정 2018 12 23 16:41
22시간 어둠이 내려 앉는 핀란드 로바니에미
내용을 적고 봉투에 담아 수신인에 ‘To. Santa Claus’(산타에게)라고 적으면 끝. 세상 모든 집배원은 산타가 핀란드의 작은 마을에 사는 것으로 하자고 약속했다. 그에 따라 전 세계에서 해마다 50만통 이상의 편지가 이곳에 배달된다.
사람들은 세상 어딘가에 산타가 산다고 믿었다. 1927년 핀란드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한 아나운서가 “산타는 로바니에미의 코르바툰투리(귀의 산)에 산다”고 얘기하면서 사실인 것처럼 퍼졌다. 그때부터 산타는 핀란드에 사는 것으로 확정(?)됐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독일 편에 서서 소련에 맞서던 핀란드는 1944년 소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독일군과 충돌했다. 당시 전쟁으로 로바니에미는 폐허가 됐다. 이후 재건을 위한 미국의 원조가 시작됐다. 1950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여사가 로바니에미를 방문했을 때 보여줄 것이 없던 사람들은 북극선이 지나가는 자리에 엘리너 여사를 위한 통나무집을 지었다.
이후 산타마을로 전 세계에서 수많은 편지가 배달됐다. 지금까지 산타가 받은 편지는 1800만통이 넘는다. 지난해에는 50만통 정도가 도착했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편지를 보냈다. 폴란드, 이탈리아, 영국, 일본, 핀란드, 러시아가 뒤를 이었다.
진짜 산타를 만나러 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행하기로 한 지인을 만나러 서울서 모스크바까지 9시간, 모스크바에서 헬싱키로 2시간,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까지 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산타마을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산타의 존재를 믿는 어린이들이 가족과 함께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마을에 찾아온 사람들은 아무도 산타가 없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누구나 산타의 존재를 확신했고 산타는 정말로 가까운 곳에 실존하고 있었다.
같은 숙소에서 지내던 영국 꼬마 소녀도 산타를 만날 거라며 들떠 있었다. 한국에서 찾아온 김예하(9)양도 산타가 있다고 믿었다. 김양은 “만난 게 너무 좋아서 같이 사진도 찍고 편지도 썼다”면서 “산타가 2만 몇 살이라며 산타 일하는 거 좋다더라”며 자신의 취재력을 귀엽게 자랑했다.
산타의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대신 산타를 간직하고 싶으면 안에서 찍어주는 사진을 사야 한다. 가격은 25~40유로(약 3만 2000~6만 4000원)로 사진 한 장 가격이라기엔 만만치 않다. 살까말까 고민을 하는 이들을 위해 나중에 온라인에서 살 수 있도록 바코드가 적힌 티켓도 나눠줬다.
●산타의 요정들 “어른의 소망 담은 편지도 답장”
산타마을 우체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산타 요정’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일했다는 아울리(Auli)는 “요즘은 평균 하루 4만통 정도가 오는데 많은 편지들이 주소도 없이 산타에게 소원을 비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바라는 편지를 봤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사람들은 산타가 소원을 이뤄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산타에게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북극이 시작되는 마을, 해는 하루 2시간
북극이 시작되는 지역인 탓에 12월 로바니에미의 해는 하루 2시간 남짓했다. 오전 11시에 해가 뜨고 오후 1시에 일몰이 시작된다. 2시가 넘어가면 어둠이 찾아와 밤이 된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 소설을 쓰는 안띠(Antti)는 “해가 짧은 게 늘 당연해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외국에서 일하다 돌아와 보니 여기가 다른 걸 알겠더라”고 말했다. 산타가 활동하려면 밤이 길어야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사실 산타는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의 이미지에, 성 니콜라오가 너무나 가난해 결혼 대신 사창가에 팔릴 위기에 처한 이웃집 세 딸을 위해 밤에 몰래 선행을 베풀고 간 이야기가 만나 만들어졌다.
●아무도 “산타는 없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어딘가에 산타가 있다고 믿는 건 누구나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고 행복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로바니에미는 산타가 있다고 믿는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없다는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산타가 없는 줄 알고 사는 어른들에게 산타가 있다고 알려주는 마을이었다.
글·사진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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