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절정, 경주서 보소
손원천 기자
입력 2022 11 23 17:44
수정 2022 11 24 04:55
가을 가득 품은 경북 경주로 단풍 여행
애초 단풍을 겨냥하고 경북 경주를 찾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만추의 고도(古都)가 끌어당기는 매력은 인력으로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당최 한 발짝도 경주 밖으로 내디딜 수 없었다. 그날 두 눈에 맺혔던 기억의 편린들을 공유한다.늦가을 경주는 거의 전역이 단풍 여행지다. 고색창연한 문화유산들과 어우러져 웅숭깊은 풍경을 선사한다. 경주 시내에선 계림을 먼저 찾아야 한다. 신라의 시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담긴 곳이다.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등 늙은 나무들이 펼쳐 내는 가을 풍경이 수수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무엇보다 봉긋 솟은 고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단풍나무들의 모습이 독특하다. 핑크 뮬리 너머로 보이는 첨성대의 자태도 이채롭다. 외국산 식물과 어우러진 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계림과 맞붙은 월정교는 노란 은행나무와 어우러진 풍경이 빼어나다. 저 유명한 경주 최 부자 고택도 월정교 옆에 있다.
구미산 자락의 용담정은 경주의 숨은 단풍 명소로 꼽을 만하다. 수운 최제우가 태어난 천도교의 성지로, 그가 지은 포교 가사집 ‘용담유사’의 배경이 된 곳이다.
●천도교 성지 용담정은 숨은 명소
용담교 일대가 최고의 포토 스폿이다. 용담정과 계곡을 물들인 단풍이 선경을 펼쳐 낸다. 용담정 바로 위는 사각형의 정자 용추각이다. 불퉁스런 바위 위에 들어앉은 자태가 딱 한 폭의 그림이다. 용담정은 입장료나 주차비를 받지 않는다. 주차선에 바퀴 한 쪽만 걸려도 돈을 내야 하는 경주에서 무료로 둘러볼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서면의 도리마을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다. 마을 전체가 은행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원래 마을 앞 은행나무들은 묘목 판매를 위해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 사이 간격이 유난히 조밀한 건 그 때문이다. 한데 판로가 막히는 바람에 방치해 뒀는데, 어느새 울창한 숲이 됐고, 이제 하루 수천대 차량들이 오갈 정도로 명소로 발돋움했다. 가을 시즌엔 마을 주민들이 길가에서 농산물과 커피, 차 등의 먹거리를 판다. 작은 카페도 들어섰다.
보문관광단지 역시 전역이 단풍 명소다. 1970년대 심은 벚나무들이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 무게감 있는 가을 풍경을 펼쳐 낸다. 보문호 주변에 조성된 보문호반길을 따라 자박자박 걸을 수 있다. 곳곳에 물너울공원, 사랑공원 등의 작은 공원과 물너울교 등의 다리, 피크닉 테이블 등이 조성돼 있다. 보문정은 봄에 벚꽃으로 소문난 곳인데, 가을 풍경도 그에 못지않게 빼어나다. 보문호에서 멀지 않다.
경주엑스포대공원에 내려앉은 가을도 장관이다. 경주타워와 솔거미술관, 비움 명상길 등 다양한 체험 콘텐츠와 단풍이 근사하게 어우러졌다. 주변의 억새 물결은 늦가을까지 장관이다. 대공원 일대 억새 군락은 축구장 3개에 이를 만큼 넓다. ‘화랑 숲’ 내 맨발 전용 둘레길인 ‘비움 명상길’ 끝자락에 조성돼 있다.
경주까지 왔으니 바다 구경 안 할 수 없다. 감포항은 탑모양을 새긴 등대가 인상적인 포구다. 밥집, 카페, 숙박업소 등 편의시설도 잔뜩 몰려 있다. 인근 전촌 해변은 ‘용굴’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사룡굴, 단용굴 등 두 개의 해식동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라 여겨지는 문무대왕릉도 멀지 않다.
글·사진 경주 손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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