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 냈다…미투는 공감·연대운동”
입력 2018 04 17 14:31
수정 2018 04 17 15:46
YWCA 한국여성지도자상 시상식에 수상 소감 서면으로 보내
서지현 검사가 17일 한국YWCA연합회의 제1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시상식에서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하면서 미투 운동의 의의를 강조하는 수상 소감을 서면으로 밝혔다.그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검찰 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강자들의 성폭력, 그럼에도 가해자를 처벌하고 징계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음해하고 괴롭히면서 피해자에게 치욕과 공포를 안겨주어 스스로 입을 닫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와 같은 만행을 가능하게 하는 검찰 내부의 부패와 인사 관행을 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십수년 동안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으면서 힘겹게 또 힘겹게 쌓아왔던 제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남성 전체를 적으로 만들고자 한 것도, 검찰 전체를 공격하고자 한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대다수의 건전한 상식을 갖고 있는 남성들이 힘겹지만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검찰에는 대다수의 선량하고 정의로운 검사들이 밤새워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MeToo(미투) 운동은 ‘공격적 폭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누구 한 사람을 공격하고 폭로하거나 개인적인 한풀이를 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바로 서야 할 검찰을, 우리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서 검사는 폭로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어난 2차 가해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그는 “그 날 이후,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수십 년을 보아온 그대로, 마치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참고 또 참던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가해자가, 조직이, 사회가 부인과 비난, 은폐와 보복을 시작한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각오했던 일이지만, 힘겹고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며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수많은 공감의 목소리 속에서, 검찰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에 뜻을 함께 하는 연대의 응원 속에서, 어쩌면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힘겹게 떨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아주 작은 빛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공감해주시는 목소리에 큰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받아, 힘을 내어 서 있다”며 “저의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일로 이렇게 큰 상을 주심에 다시 한 번 영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인사했다.
서 검사는 현직 검사로서 검찰 내 성폭력 실태를 고발해 미투 운동에 불씨를 지피며 한국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낸 점을 인정받아 이번 상을 받게 됐다.
이날 오후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서 검사 대신 변호인단의 조순열, 김예원 변호사가 참석해 상패를 받았다.
조 변호사는 “서지현 검사가 정말 이 자리에 오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건강상 문제가 있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건 때문에 이 자리에 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검사가 검사직을 걸고, 나아가 목숨을 걸겠다는 큰 마음으로 세상에 드러내놓기 시작했을 때는 과연 어느 누가 서 검사를 지켜줄까 걱정했는데, 어제 검찰이 (가해자인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 여러분이 가까이서 지켜주고 성원해줘서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서 검사가 피해자로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검사로서 여성으로서 여성인권 향상에 앞장서는 리더가 되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끝까지 관심과 성원을 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은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이 받았다.
곽 소장은 수상 소감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성들의 하나된 목소리’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가정, 사회에 완전한 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으로 곽 소장은 3천만원을, 서 검사는 2천만을 받았다.
서 검사 대리인인 조 변호사는 “서 검사가 상금이 있는지 몰랐다. 상금이 있다고 전했더니 본인이 이걸 받기에는 과분하고 여성인권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께 기부해서 쓰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축사로 “곽배희 소장은 오랫동안 여성인권을 위해 헌신했고, 서지현 검사는 미투 운동의 기폭제를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여성이 힘을 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저절로 바뀌진 않는다. 함께 힘내서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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