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산재유족 특채는 사회적 약자 배려”… 재계 “고용세습” 반발
대법, 일자리 대물림 논란 종지부
“근속자 자녀특채와 달리 공정성에 기여
1990년대 단체협약… 협약자치는 기본권”
노동계 “정부·기업 산재 책임” 판결 환영
이날 쟁점이 된 조항은 현대·기아차가 25년 전 노사간 합의에 따라 단체협약에 넣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다.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 사유가 없는 한 6개월 내 특별채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 수단으로 포함됐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산재공화국’이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수는 2020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중 최근 23년 동안 21번이나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이 조항이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된 건 취업난과 결부되면서다. 현대차 측 변호인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 “부모가 조합원이었다는 지위는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얻어지는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라면서 “대법원이 고용세습 조항에 대해 무효를 선언해 청년 실업자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는 해당 조항이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회 질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1·2심은 “사용자의 고용계약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고,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해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무효라고 판단했는데 대법원에서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1명의 다수의견은 “노사가 1990년대부터 자율적으로 해당 조항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켜 왔고, 헌법에서 인정되는 협약자치의 관점에서도 이 조항이 유효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단체협약은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으로 법원이 단협 조항의 효력 유무를 판단할 때는 신중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건은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기아차에서 근무하다 현대차로 자리를 옮겼지만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망한 유족이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유족은 단협 규정에 따라 채용해 달라고 주장한 것인데, 고용 세습 논란으로 번졌다. 유족 측 변호인은 지난 공개변론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지 타인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라며 이런 논란에 대해 안타깝다는 심정을 내비쳤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현대차 측은 “산재사망자 유족에 국한된 것으로 모든 특별채용 조항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청년실업이 만연한 상황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특별채용 논란이 확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가족들에 대해 사업주와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환영 입장을 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도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란 부분에서 당연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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