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500m 전 뒤에서 ‘쾅’… 구명조끼 안 입는 관행, 희생 키웠다
‘유람선 충돌’ 사고의 재구성
20여명 2층 갑판서 사진 찍거나 하선 준비나머지 10여명은 1층 선실에서 쉬다 참변
유람선, 갑자기 방향 틀어… 두 차례 충돌
허블레아니호는 현지시간 29일 밤 9시 5분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대형 크루즈선인 바이킹시긴호와 충돌했다. 탑승객 35명 중 30명은 동유럽 패키지 여행 중인 관광객이었고 나머지 3명은 한국인 가이드, 현지 가이드, 사진작가 등이었다. ‘동유럽의 파리’로 불릴 만큼 유서 깊은 역사와 도시 경관을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야간 유람선 투어는 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인기 코스로 꼽힌다.
여행사는 해당 선박을 임대해 현지 승무원 2명도 고용했다. 50분 정도 다뉴브강을 따라 국회의사당, 왕궁 등 현지 명소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관광객 20여명은 2층 갑판에서 사진을 찍거나 하선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머지 10여명은 1층 선실에 쉬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귀항지까지 불과 500m 남겨두고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서 사고를 당했다. 구조대장인 졸트 팔로타이 부다페스트 재난관리국장은 “영상 분석 결과, 나란히 북쪽으로 가던 허블레아니호가 어떤 이유로 바이킹시긴호 앞에서 방향을 틀었고 바이킹시긴호가 허블레아니호와 충돌했다”고 설명했다.
헝가리 당국은 사고 직후 다뉴브강 일대의 선박 통행을 중단하고 현장 구조 작업에 전문 소방관 96명, 잠수부, 군 병력 등의 인력과 레이더스캔 등 특수장비를 투입했다. 경찰과 구급대 소방대가 출동하기 전까지 시민이 승객을 구조하기도 했다. 다뉴브강 양쪽에 정박한 선박이 강물에 탐조등을 비추며 심야 수색 및 구조를 도왔고 사고 지점 하류에 있는 다리 위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 제작진도 강물에 조명을 비추기도 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한국인 생존자 7명이 구출돼 인근 3개의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한국인 7명은 시신으로 수습됐다. 보통 6시간으로 알려진 골든타임이 지난 30일 새벽 3시까지 19명의 생존자는 찾지 못했다. 이번 달만 14일간 비가 내려 유속이 빨라졌고 유량도 많아진 상태다. 다뉴브강은 한강과 강폭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평균 유량이 초당 6500㎥로 한강의 10배 수준이다.
생존자들은 사고가 일어난 당시 폭우가 내렸다고 전했다. 일정을 강행한 이유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가해 선박은 사고 후에도 구호조처 없이 계속 같은 방향으로 운항했다.
사고가 명백한 인재라는 주장도 현지에서 제기됐다. 임레 호르배트 헝가리 항해협회 사무총장은 이날 헝가리 M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형 크루즈선이 다른 배와의 거리를 4m로 유지하도록 위성항법장치를 갖추고 있다”며 “당일 밤 강 시야가 나쁘지 않아 눈으로 다른 배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했다. 생존자 윤모(32·여)씨는 “뒤늦게 나타난 구조대는 나처럼 구명튜브를 잡은 사람들이나 다른 유람선 선원이나 관광객이 붙잡고 있었던 분들을 건져내기만 했을 뿐”이라고 했다.
헝가리 통신사 MTI에 따르면 선박대여업체 파노라마 덱이 2003년부터 운영한 허블레아니
호는 오는 2020년 10월까지 유효한 면허를 갖고 있었다. 선장과 선원은 각각 58세, 53세로 수십 년의 경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구간은 야경이 빼어난 곳으로 야간에만 70척 이상의 배가 오가는 복잡한 구간이다. 유람선 수가 늘고 규모가 대형화되면서 사고 가능성이 높아져 왔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비가 내리는 다뉴브강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혼탁한 흙빛이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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