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6도, 첫 차 타고 아침 먹으러 온 독거 노인에···“숭늉 한 그릇의 온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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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나눔운동본부가 아침 무료 나눔을 시작한 지 이틀째인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에서 박정세(77)씨가 눌은밥을 먹고 있다.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아침 무료 나눔을 시작한 지 이틀째인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에서 박정세(77)씨가 눌은밥을 먹고 있다.
“외롭고 적적한 집에 혼자 있으면 뭐해? 나 같은 노인네는 여기 와서 밥 한 그릇 먹는 게 낙이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6도를 기록한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무료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아침 식사를 기다리던 황종갑(93)씨가 난로에 몸을 녹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중랑구 면목동에서 왔다는 황씨는 이날 오전 4시 45분 집에서 나와 첫차를 타고 6시 20분쯤 무료급식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황씨는 “다달이 받는 노인연금 30만원으로 사는데 밥퍼에 오면 아침도 주고 친구도 만날 수 있어서 매일 온다”고 환하게 웃었다.

최근 재료비·연료비의 급격한 인상 탓에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던 구내식당이 줄폐업하고 대학 학생식당도 조식 중단에 나서는 상황에서 ‘점심 나눔’을 해온 밥퍼는 이달부터 무료 급식을 아침까지 확대했다.

한끼 무료 급식에 드는 비용은 약 200만원. 1년 전에 비해 식재료 값과 공과금이 30% 정도 올랐지만 35년 전 냄비 하나로 시작한 나눔의 기적을 또 한번 기대해보기로 한 것이다.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공동체 직원 김주영씨는 5일 “점심 나눔은 오전 11시부터 시작되지만 새벽부터 밥퍼를 찾아 점심 때까지 기다리는 독거노인, 노숙인을 외면할 수 없어 아침 식사도 제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6년간 밥퍼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전날부터 아침 시간 주방장이 된 김동열(61)씨가 2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에서 누룽지탕을 끓이고 있다.
곽소영 기자
16년간 밥퍼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전날부터 아침 시간 주방장이 된 김동열(61)씨가 2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에서 누룽지탕을 끓이고 있다. 곽소영 기자
‘아침 나눔’ 이틀째인 2일 오전 6시 40분 밥퍼 주방에서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눌은밥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배식 시간인 오전 7시가 되자 일찍부터 기다리던 손님 9명이 차례로 눌은밥 한 그릇과 핫도그 한 개, 초콜릿 한 개를 받아갔다. 배식 17분 만에 눌은밥이 담겨있던 업소용 대형 밥솥이 바닥을 드러냈다.

한 달째 청량리역에서 노숙하는 임용규(50)씨는 “공장에 취업하려고 충남 서산에서 올라왔는데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역에서 먹고 자며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며 “그동안 제대로 된 밥을 거의 먹은 적이 없는데 우연히 밥퍼를 알게 돼 어제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아침과 점심을 챙겨먹었다”고 털어놨다.

경기 남양주에서 온 이정룡(92)씨는 “3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서는 밥상을 차리기 힘들고 물가도 올라서 아침을 거르는 날이 많았다”며 “밥퍼에 오면 따뜻한 밥도 먹고 다른 노인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아침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아침 식사를 한 노인 40여명은 삼시세끼 부담을 덜어준 밥퍼에 고마움을 표했다. 택배 기사인 김민태(69)씨는 “옛날에는 3000원으로 식당 밥 한끼를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밥 한끼가 1만원이 넘어 매번 밖에서 사 먹을 수가 없다”며 “밥퍼 덕분에 택배 차량 유지비라도 마음 편히 내면서 일한다”고 했다. 노영심(82)씨도 “집에선 된장찌개 한 냄비를 끓여 일주일을 먹는데 밥퍼에 오면 매일 다른 반찬을 먹을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글·사진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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