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잘하는 일이 재판” 다시 법복 입은 前 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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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현 원로법관 소액전담재판 첫날

퇴임 앞두고 이직 권유도 받았지만
잘 맞는 일이 재판이란 생각에 결심
5시간 동안 35건 당사자들과 대화
“다양한 목소리 듣고 법원에 도움 되길”
성백현(오른쪽)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이 지난달 13일 법원장을 맡았던 서울가정법원을 떠나며 법원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br>서울가정법원 제공
성백현(오른쪽)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이 지난달 13일 법원장을 맡았던 서울가정법원을 떠나며 법원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제공
“서울중앙지법 민사1005단독 오전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5일 서울중앙지법 제2별관 101호 법정, 성백현(60·사법연수원 13기) 원로법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최근 2년간 가정법원장을 지낸 뒤 원로법관으로 지원한 그가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법 소액전담재판부를 맡고 나서 맞이한 첫 재판일이다. 가정법원장 전에도 서울고법에서 법복을 입었지만 사건 규모나 당사자들이 확 달라진 소액사건을 맡게 됐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성 원로법관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14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21건, 총 35건의 재판을 진행했다. 10분에 1~2건꼴이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 “재판을 너무 오랜만에 다시 하니 떨려서 얼마나 기록을 꼼꼼하게 읽어 봤는지 모른다”던 그의 얼굴에 긴장감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났다.

이날은 보험사나 기업이 당사자인 사건들이 많아 변호사들이 많이 출석했지만 소가 3000만원 미만의 소액사건은 주로 당사자들이 직접 의견서를 써내고 법정에서 변론을 한다. 어려운 법리 논쟁보다는 감정적인 호소가 허다하다. 법원장 출신 고위 법관으로서 매우 오랜만에 서민들과 마주하고 소통하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변호사 개업 제안도 뿌리치고 원로법관에 자원한 것은 “제일 잘하는 일이 재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 원로법관은 “법원장 퇴임을 앞두고 로펌들의 제의도 있었고, 특히 가족들은 이제 좀 여유로운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은근히 있었다”면서 “그래도 저한테는 재판이 가장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민사재판은 전자법정으로 이뤄지다 보니 간혹 모니터 속 사건번호를 잘못 언급하거나 사건기록을 찾는 데 약간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일일이 기록과 증거자료들을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띄워 보이며 안경 너머로 당사자들과 눈을 맞추고 차분히 대화를 나눴다.

인테리어 공사비 잔금 660만원 때문에 소송을 당한 한 피고는 “재판장님, 부산에서 재판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데 원고는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며 재판을 빨리 끝내 달라고 토로했고, 한 변호사는 지각을 하는 바람에 다음 사건이 진행되는 중에 “앞 사건인데 늦었다”며 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성 원로법관은 “원고가 입증 자료를 낸다고 하니 한 기일만 더 해보겠다”거나 “원고 측이 추가 자료를 내시기로 했고 다음 기일은 4월 9일”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재판 일정을 마무리한 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인 재판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주며 법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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