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확인한 헬기사격 ‘오리발’… 전두환 ‘5·18 참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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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다시 법정에…공소사실 부인

全씨측 “국가기관, 기총 확인한 적 없고
정권 바뀌면서 조사결과 바뀌었다” 주장
재판 관할 이전 신청서도 다시 제출해


재판장, 신원 확인에 “잘 안 들린다”
헤드셋 쓴 뒤엔 “맞습니다” 또박또박
재판 중 졸다 헬기 사격 언급에 눈 떠


방청석에선 “살인마 죽어라” 외침도
쫓기듯 부랴부랴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11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마친 뒤 시민 등 답변을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을 뒤로한 채 서둘러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br>광주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쫓기듯 부랴부랴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11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마친 뒤 시민 등 답변을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을 뒤로한 채 서둘러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광주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1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을 가득 메운 이들은 단 한 사람만 바라봤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힌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2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 전두환(88) 전 대통령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참회의 기회, 과연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그의 입에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1시간 15분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전씨는 사과는커녕 변호인을 통해 “헬기 사격은 없었다”며 역사를 뒤집었다.
법원에 들어서며 “이거 왜 이래”라며 신경질을 냈던 전씨는 재판이 시작되자 느릿한 걸음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장인 장동혁(50·사법연수원 33기) 부장판사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신원을 확인하자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후 전씨의 귀에는 헤드셋이 씌워졌고, 전씨는 재판장이 생년월일과 직업, 주소 등을 확인하자 “맞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답했다. 방청석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작정한 듯 앞만 바라보는 전씨의 옆에는 부인 이순자씨가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함께했다. 검찰이 전씨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 때문에 2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된 공소사실을 낭독하려고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우자 전씨는 잘 안 보인다며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검찰은 전씨의 내란수괴 등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과 1996년 12월 무기징역이 선고된 데 이어 다음해 4월 17일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을 통해서도 전씨가 5·18 당시 강경 진압을 지시했음이 인정됐으며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발표, 군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근거로 당시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씨 측 정주교 변호사는 ‘헬기 사격’ 대목부터 “증명이 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헬기 사격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의 증언 역시 사실이 아니며 전씨가 고의성을 갖고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 변호사는 그러면서 “검찰이 관할권이 없는 법원에 기소해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며 광주지법에서 재판받는 것을 또 문제 삼았다. 이미 지난해 광주고법과 대법원에서 관할 이전 신청이 모두 기각됐지만, 정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른 관할 위반을 판결로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씨는 이따금씩 꾸벅꾸벅 졸다가 5·18 당시 헬기 사격에 대한 입장을 변호사가 밝히자 눈을 뜨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 변호사는 “1995년 국방부와 검찰 공동수사 결과 발표에서 헬기 기총사실에 대한 조 신부의 진술을 사실로 인정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검찰이 근거로 든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들을 뒤집는 발언들을 쏟아 냈다.

특히 조 신부가 밝힌 1980년 5월 21일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의 헬기 사격에 대해 정 변호사는 “정권이 바뀌면서 조사 결과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7년 발표된) 국과수의 탄흔 발생 원인 추정이 과학적이지 않다”, “특조위가 직접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결정을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국과수 발표의 근거가 된 전일빌딩 탄흔도 “다양한 총격전으로 생긴 것”이라고 했다. 끝내 조 신부의 증언을 무시해 버린 것을 넘어 “국회도 진상규명에 나서고 있다”며 헬기 사격에 대한 정치 쟁점화를 시도했다.

재판 내내 옆자리를 지킨 부인 이씨는 재판이 끝날 무렵 재판장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기도 했다. 재판장이 “재판에 임하는 느낌과 당부사항으로 이해하면 되느냐”고 묻자 이씨는 “네”라고 답했다.

장 부장판사는 검찰이 이날 증거목록을 내지 않아 공판준비기일을 다음달 8일 한 차례 더 갖기로 했다. 전씨 측이 헬기 사격 자체를 부인하는 바람에 향후 재판에서는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를 두고 여러 기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기초 사실조사 및 다양한 증거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재판이 끝나자 방청석에선 “전두환, 살인마 죽어라” 등의 꾹꾹 누르고 있던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전씨를 법정에 서도록 한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 측 김정호 변호사는 “진실을 바로잡고 사과하라는 것뿐인데, 전씨는 여전히 5·18 역사 전체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헬기 사격 자체를 부인할 거라 생각 못했는데 앞으로 재판이 많이 길어질 것 같다”고 비판했다.

광주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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