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안 된 과거사 피해자도 국가 손해배상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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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불기소 피해자 ‘재심 소멸시효’ 적용

안기부 간첩 조작 고문 피해자 재심서 승소
“다른 피고인 재심 무죄 판결 전 소송 어려워
우연한 사정 따라 권리구제 다르면 부당”
양승태 사법부 판결 헌재 결정 이후 뒤집혀

과거 간첩 조작 사건에서 고문을 당했지만 기소되지 않았던 피해자도 유죄가 확정돼 수감 생활을 한 다른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국가배상청구권 행사 기간을 민법상 단기 소멸시효(3년)보다 짧은 6개월로 보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한 것을 법원이 받아들이며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5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 설범식)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체포·구금·폭행·고문을 당한 피해자와 가족 등 27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약 5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씨 등 8명은 1981년 3~4월 안기부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뒤 간첩이라고 거짓 자백했고, 이 중 5명이 기소돼 징역 3년 6개월~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1월 수사기관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인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했고, 이들은 그해 11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듬해 10월 형사보상결정이 확정됐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1년 5월에야 피해자 8명과 그 가족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양승태 사법부는 민법상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를 적용하던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배상 범위를 좁히는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는 2014년 12월 하급심에서 승소했던 박씨 등의 사건을 “형사보상 결정이 확정되고 6개월 이상 경과 후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또한 기소되지 않았던 한모씨 등 3명에 대해서도 “과거사위의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적이 없고,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적도 없다”며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후 서울고법 민사28부(부장 박정화)도 2015년 9월 같은 취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헌재가 지난해 8월 30일 박씨 등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재심판결 확정을 안 날부터 3년 이내에 국가배상을 청구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결정을 내렸다.

박씨 등의 사건을 재심한 서울고법 재판부는 “대부분 원고들은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된 2009년 11월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2011년 5월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청구를 받아들였다.

불기소된 한모씨 등 3명에 대해서도 다른 피고인들의 재심 무죄 판결 전에는 불법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만약 기소됐다면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이고 재심을 거쳐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동일한 불법 감금과 고문 피해를 입었는 데도 검사의 불기소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권리구제 여부가 달라지는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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