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 손배 제한” 노란봉투법 닮은 대법 판례 나왔다
현대차 파업 손배소 파기환송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가운데 대법원이 사실상 유사한 판례를 내놓으면서 향후 국회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차가 비정규직지회 소속 노동자 A씨 등 4명을 상대로 낸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20억원과 그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이 속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2010년 11월 15일부터 그해 12월 9일까지 현대차 울산공장 1, 2라인을 점거해 공정을 278.27시간 동안 중단시켰다. 이로 인한 손해액은 271억여원으로 추정됐다.
현대차는 쟁의에 가담한 A씨 등 노동자 29명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20억원을 청구했다. 여기에 A씨 등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단체교섭을 거부했기에 정당한 쟁의행위를 한 것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1심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쟁의행위는 정당성이 없다”며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인정해 A씨 등이 함께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차는 이후 정규직 전환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한 25명에 대해선 소송을 취하했고, 남은 A씨 등 4명을 상대로 항소를 제기했다. 2심에서도 판단은 같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위법한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주도한 노조와 여기 참여한 개별 조합원 각각의 책임을 똑같이 보고 손해배상액을 계산한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노조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또 이날 현대차가 비정규직지회 소속 근로자 B씨 등 5명을 상대로 4500만원을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2312만여원과 그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 등이 속한 비정규직지회는 2013년 7월 현대차 울산공장 내 일부 라인을 점거해 약 63분간 공정을 중단시킨 바 있다. 대법원은 쟁의행위로 인한 기업의 손해를 따질 때 생산 차질이 있었다고 무조건 고정비용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주도로 지난달 국회 본회의로 직회부된 노란봉투법의 입법 목적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해당 법안에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노동자 개인이 노조 활동을 이유로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에 시달리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나온 대법원 판례로 노란봉투법이 입법되지 않더라도 사실상 효력을 갖게 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부진정 연대책임’의 특별한 예외를 인정해 불법행위자 개별로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노조법 개정안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부진정 연대책임은 채무자 여러 명이 각각 독립적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채무를 변제할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노동계는 대법원 판단을 환영하면서 이번 판결이 입법으로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한 대법원의 손해배상책임 제한 판결을 환영한다”며 “국회는 신속하게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 추진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쟁의 행위에 대한 사측의 ‘묻지 마’식 손해배상 청구에 경종을 울리는 중요한 판결로 노란봉투법의 정당성을 대법원이 확인했다”며 “대통령도 국회 입법권을 존중하고 국제 노동 기준에 부합하는 노조법을 제·개정하는 데 협조하라”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차 측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며 산업계에 미칠 파장 역시 우려된다”며 “파기환송심에서 잘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도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유일한 대응 수단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향후 관련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정당한 보호와 폭력적 불법행위의 근절을 위해 산업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신중한 해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강윤혁·오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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