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성적인 의도 없다” 상의 벗고 마라톤 완주…유방 당당하게 드러낸 이유

김민지 기자
입력 2026 11 04 09:55
수정 2026 11 04 10:55
유방암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받은 미국의 한 여성이 상의를 벗은 채 뉴욕 마라톤을 완주해 화제다. 유방암 생존자로서, 가슴에 남은 절제술 흉터를 당당히 드러내 유방암에 대한 인식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2일(현지시간)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 뉴저지주 출신인 기업가이자 인플루언서 로렌 스피지아는 지난 1일 2026 TCS 뉴욕시 마라톤에 상의를 벗고 참가해 42.195㎞를 완주했다. 그의 공식 기록은 4시간 54분 04초다.
스피지아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마라톤이 메시지를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무대’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대회 코스에 자신이 유방암 치료를 위해 다녔던 병원 앞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는 “내 몸을 어떤 대의를 위해 드러내야 한다면, 나의 의료 여정이 펼쳐졌던 장소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 앞에 서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상의를 벗고 달린 이유가 단순히 성적인 목적이나 남성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스피지아는 “상의를 탈의한 건 결코 성적 목적이나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서 “우리의 건강을 주도적으로 챙기고, 나 스스로와 여성 모두의 건강을 위해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피지아는 2024년 11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겨우 31세였다. 한쪽 유방에서는 삼중음성 유방암 2기 진단을, 다른 쪽에서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1기 진단을 받았다. 삼중음성 유방암은 유방암의 치료 표적이 되는 세 가지 주요 수용체가 모두 없는(음성) 유형의 유방암을 뜻하며,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여성 호르몬을 먹이 삼아 자라는 성질을 가진 유방암을 말한다.
검사 과정에서 스피지아는 자신이 유방암 발병 위험과 관련된 BRCA2 유전자 변이를 보유한 사실도 알게 됐다.
결국 스피지아는 항암치료 16회와 면역치료 8회를 거쳤으며, 유방절제술과 유방 재건 수술도 받아야 했다.
스피지아는 상의 탈의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유방 절제술 후 탈의실에서 처음 옷을 갈아입을 때 느꼈던 감정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슴을 숨기려고 몸을 움츠리는 제 모습을 발견했는데, 이전에는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며 “나도 모르게 수치심이 생긴 것이었는데, 그 수치심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흉터들은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했던 의료 흔적이자 암을 이겨냈다는 명예의 훈장”이라며 “수치심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흉터를 드러낸 채 마라톤을 달린 것은 그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스피지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여전히 현재에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흉터를 가리지 않고 뉴욕시 마라톤을 달릴 예정”이라며 “치료실 의자에 앉아 ‘나에게는 이겨낼 힘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만 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 달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평생 한 번은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될 미국 여성 8명 중 1명, 그리고 아직 자신의 위험성을 모르는 모든 여성들을 위해 달리겠다”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달리겠다. 내 흉터는 숨겨야 할 것이 아니다. 내가 싸워냈고 살아남았다는 증거”라고 적었다.
뉴욕주에서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상의를 탈의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스피지아는 의료진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고, 의료진도 처음부터 캠페인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피지아는 “제가 지나갈 때 충격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많은 지지와 응원도 쏟아졌다”며 “이것이 바로 이번 마라톤의 목표였다”고 전했다.
스피지아는 자신의 성취가 다른 생존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유방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요즘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나다운 모습’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라면서 “천천히 저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지금의 제 모습은 예전의 저보다 훨씬 더 멋지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스피지아의 도전에는 ‘더 톱리스 러너’(The Topless Runner, 윗옷을 벗고 달리는 사람)로 불리는 영국 러너 루이스 버나데트 부처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스는 자신의 SNS에 “올해 초 스피지아는 내게 연락해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며 “스피지아는 유방암 치료 후 재건 수술을 거친 경우에도 유방 절제술 흉터를 노출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펼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녀가 해냈다. 스피지아가 뉴욕 마라톤에서 유방 절제술 흉터를 드러낸 채 달렸다”며 스피지아의 완주 소식을 축하했다.
루이스는 암으로 양쪽 유방 절제술을 받은 뒤 상의를 벗은 채 달리기를 이어오고 있다. 유방암과 유방절제술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루이스는 2023년 런던 마라톤에서 ‘양측 유방절제술을 받은 여성 중 가장 빠른 마라톤 완주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Guinness World Record)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도 매일 상의를 벗은 채 달리는 일상을 SNS에 올리고 있으며, 수많은 유방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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