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호박죽을 끓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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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꼬부라지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이 문장을 쓴 시인은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골목을 돌아 걷는다.

천년 유적이 아니면 어때서. 다 보고 가도 좋아요, 안마당이 넘어다뵈는 담장. 실금 사이로 기어이 돋은 민들레.

낮아서 호락호락했던 담벼락에는 탐스러운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더랬지. 하루하루 호박이 여무는 이즈막에는 어느 집이라도 햇호박죽을 끓였다. 순번을 정한 것도 아닌데 달게 끓인 늙은호박죽을 늙은 양푼에 담아 담장 너머로 집집이 나눠 먹었다.

내 키만큼이나 낮은 담장을 따라 활짝 품을 벌렸던 작은 대문들. 넘어와도 좋아요, 점선으로 가득했던 시간.

짜부라진 양푼들이 왜 보고 싶은지. 양푼보다 더 동그랗게 잘 웃던 얼굴들을 데리고 여름은 어디로 갔는지.

주저앉고 싶은데 버티고 섰는 날. 속이 둥그런 호박죽을 끓인다. 동그란 주걱으로 둥글게 둥글게 저으며 마음속으로 우물거린다. 들어가도 되나요.

작은 대문이 열리고 그날처럼 둥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오너라, 어서 들어오너라.

황수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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